'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
분향소 명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분향소' 명명 
'근조'나 '추모' 등 글자 없는 리본 달아라 지시도
정치권과 시민들 "이해할 수 없는 일" 의문 제기
정부 "가해자 책임 안 나와", 리본 글씨 해명 부실
야권 "책임 회피하고 희석시키려는 의도" 의구심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정부 책임과 애도 의미를 축소하려는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지시로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하고, 이에 더해 정부, 지방자치단체 설치 분향소 조문 시 '근조'나 '추모' 등 글자가 쓰여 있지 않은 검은 리본을 일괄적으로 착용하게 했다. 이에 정치권과 국민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에 설치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합동분향소 명칭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로 명명했다. 2016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는 전국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설치한 바 있다.

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망자'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를 두고 정부는 "가해자 책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망자, 부상자 이렇게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명확하게 가해자 책임이 확인됐다면 '희생자', '피해자' 용어를 쓸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립적인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망자 명칭 논란에 대해 "공식적인 행정문서에서 표현하는 것을 현 정부가 갖고 있는 애도의 마음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가 공문으로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근조'나 '추모' 표시를 하지 않은 검은 리본을 달도록 한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31일 경남도청 마당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현장에 비치된 리본을 글자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 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사혁신처는 1일 설명자료에서 "각 기관에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을 달도록 조치한 건 맞다"면서도 "애도를 표하기 위한 리본에 일률적인 규격 등이 지정돼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왜 글씨가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통일하라고 했는지에는 이해할만 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관련 유실물 센터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발견된 유실물들을 전산에 등록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관련 유실물 센터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발견된 유실물들을 전산에 등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이 관련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수습과 애도에 전념할 때"라며 정쟁을 중지하겠다고 한 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정부 태도에는 비판 목소리를 냈다.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사망자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이다. 희생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거나 다치거나 피해를 당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이태원 참사 156명 희생자가 그냥 죽은 사람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정부가 어찌 이리도 무도하고 이중적이고 잔인할 수 있느냐"며 "윤석열 정부에게 묻는다. 이번 참사에 희생된 분들이 희생자인가, 아니면 사망자인가"라고 거듭 물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부가 명백한 참사를 사고로 표현해 의미를 축소하거나,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며 "근조 글씨가 없는 검정 리본을 쓰라는 지침까지 내려 행정력을 소모할 때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가 광장 등 야외 공간이 아닌 시도 청사 등 시설 내부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려 시민 조문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컷뉴스>는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면서 "이 탓에 서울·전남·경남을 제외한 14개 시도 합동분향소는 청사 또는 관리 건물 내부에 설치돼 시민의 자발적 추모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비가 온다는 소식도 없는데 실내 분향소를 차린 이유를 행안부 등 관련 기관은 명확히 해명해야 한다"고 짚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자치단체와 경찰이 권한과 책임을 구분할 게 아니라 미리 협업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모든 부처가 안전 주무부처라는 각별한 각오로 안전 관련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것"도 강조했다. 국무회의 직후에는 국무위원들과 녹사평역 광장 합동분향소,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원을 찾아 조문했다. 지난달 31일에 연이은 조문 행보다.

한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지역별 유관 기관을 활용해 유가족과 부상자는 물론 일반 시민도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서도 시민 안전이 철저하게 담보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외 사례 등을 참고해 많은 인파가 몰린 지역에 대한 과학적 관리기법을 모색하고, 다중 밀집장소 행동 수칙 등 안전 교육이 내실있게 이뤄지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벌어지기 4시간 전부터 시민이 위험하다는 신고를 112에 11건 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이 공개한 지난 29일 참사 이전 112 신고 내역 자료를 보면 첫 신고는 이날 오후 6시 34분에 있었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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