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석(67·창원 마산합포구 월영동) 씨는 별일이 없으면 매일 오전 9시께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산73번지를 들른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가량, 너른 광장을 대비로 쓸고 마른 수건으로 위령탑과 명단석을 닦는다.

운동 삼아 오가던 광장과 위령탑 주변에 쓰레기가 널브러졌기에 마음이 쓰였던 이 씨는 3개월 가까이 비질을 했다. 그는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알았지만, 바다에 시신을 수장한 사실은 처음 들었다”며 “명단석에 쓰인 이름을 가끔 읽는데, 유족 마음이 어떨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산 괭이바다가 곧장 보이는 이곳에 최근 들어선 광장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공간이다. 광장 가운데에 선 5.6m 위령탑은 ‘그날의 눈물’이다. 위령탑 뒤 명단석에는 감 씨부터 황 씨까지 희생자 520명 이름을 새겼고, 시간이 지나 더 드러날 희생자 이름을 새기도록 빈 명단석도 뒀다.

한국전쟁 전후 창원지역에서는 민간인 2300여 명이 재판을 받지 않고 학살당했다. 이승만 정부는 마산형무소에 있던 국민보도연맹원 등 1681명을 1950년 괭이바다에 수장했다.

29일 시민 이정석 씨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창원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주변을 대빗자루로 쓸고 있다. /최환석 기자
29일 시민 이정석 씨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창원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주변을 대빗자루로 쓸고 있다. /최환석 기자

누구도 몰랐던 이 씨 비질은, 우연히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회원 눈에 띄어 알려졌다. 무슨 사연인지 말을 아끼던 이 씨는 작고한 아버지 기억을 꺼냈다.

한국전쟁 전 마산과 진해를 잇던 마진선 열차 차장이었던 이 씨 아버지는 노동조합에 들었다는 이유로 마산형무소에 잡혀갔다. 당시 창원군 상남면장이었던 이 씨 할아버지 덕으로 풀려났지만, 이 씨 아버지와 함께 끌려갔던 나머지 동료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살아생전 이 씨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동료를 떠올리고는 죄스러운 마음을 토로했다.

“2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서 비질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기사가 나면 앞으로 농땡이는 못 치겠네요(웃음). 이왕 시작했으니, 힘이 닿는 한 비질을 하겠습니다.”

창원시는 정비를 추가로 마치면 내달 위령탑 제막식과 합동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창원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주변은 앞으로 과거사 회복과 역사 교육장으로 쓰일 참이다. 이 씨는 아픈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행정에 관심을 이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광장 들목에 장기 주차 차량을 막는 말뚝을 세우고 여러 시민이 아픈 역사를 살피도록 광장 주변에 벤치를 두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은 기사에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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