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걷는 남파랑길 (17) 구조라유람선터미널~저구항

가을이 무르익는 시기다. 샛노란 단풍잎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우리 곁에 가을이 성큼 와있다는 걸 일러주고, 나뭇잎 하나 없는 벌거벗은 나무 또한 계절 변화를 일깨워준다. 거제 구조라유람선터미널부터 저구항까지는 시 외곽 적적한 동네다. 화려하진 않아도 꼭꼭 숨겨두었다가 종종 꺼내 보고 싶은 호젓한 가을이 그곳에 있었다.

거제 외도 보타니아공원. /거제시
거제 해금강. /거제시
거제 해금강. /거제시

◇거제 9경 품은 거제 구조라 = 언뜻 보면 평소와 다름없는 농어촌 풍경이다. 파란 바다를 낀 구조라항에 정박한 유람선과 물길을 가르며 나아가는 어선들. 요즘 평일에는 오후 2시 30분만 되면 외도와 해금강으로 오가는 유람선이 뚝 끊긴다. 해가 짧아진 데다 오가는 사람이 적어서다. 평일 늦은 오후까지 운영되던 유람선은 당분간 만나볼 수 없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해금강 바위 절경, 그리고 외도 보타니아공원을 보려면 서둘러 표를 끊어야 한다. 유람선 선착장에서 뱃길로 10분 거리에 외도 보타니아공원이, 20분 거리에 해금강이 있다.

외도 보타니아는 거제도와 4㎞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에는 여러 난대·열대성 식물이 자라고 있다. 맑고 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해금강, 홍도, 대마도 등을 조망하기 좋은 민간 공원이다. 1969년부터 이창호ㆍ최호숙 부부가 14만 5002㎡ 터에 희귀 아열대 식물 740여 종과 편의시설 7동을 설치해 운영해왔다.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중해 한 해변을 옮겨 놓은 듯한 이국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있는 외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 있는데, 서도에 식물원과 편의시설이 조성돼 있다. 동도는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해금강은 해금강마을 남쪽 500m 해상에 있는 무인도 갯바위섬이다. 지형이 칡뿌리가 뻗어 내린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갈도(葛島)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흔히 바다의 금강산을 뜻하는 해금강이라 불린다. 강원도 강릉 명주 청학동 소금강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1971년 3월 23일 문화재청이 명승(경치가 아름다워 이름난 곳)으로 지정했다. 면적은 12만 1488㎡, 높이 116m, 폭 67.3m로 한 송이 연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3개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있는데 이 모습이 신선 같다고 하여 삼신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거제 구조라 마을 일대. /최석환 기자

 

거제 구조라진성. /최석환 기자

◇야산에 남은 역사...왜적 막아선 산성 켜켜이 = 구조라항 주변을 에워싼 일대 산지에 지나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일운면 구조라리 앞산 능선에 있는 거제 구조라진성이다. 옥포진성, 구율포진성 등과 함께 대한해협을 바라보고 쌓은 성 중 하나다. 구조라성 망루가 있는 성벽으로 이어지는 짧은 오솔길(샛바람 소리길)을 거쳐 터널처럼 어둡고 긴 대나무숲을 지나야 나온다. 둘레 860m, 너비 4.4m, 높이 4m 규모로 비교적 온전하게 성벽이 남아 있다.

여기에도 익숙한 역사가 서려 있다. 조선시대 낙동강 서쪽 지역인 경상우도 소속 수군진성, 그러니까 조선시대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군대가 적으로부터 물자를 보호하려고 포구를 중심으로 만든 성이 구조라진성이었다. 산성은 쓰시마섬 쪽에서 오는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고자 성종 21년(1490년)에 쌓였는데, 남문지와 북문지는 성문을 지키고자 반원형으로 만들어졌다. 전방 진지 기능과 지세포성 경계 임무 구실을 했다.

구조라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동네 야산에도 이런 역사가 쟁여 있다. 어쩌면 진짜 거제는 이 산성에 있는지 모른다. 특별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풍경에서 길어 올리는 500여 년 전 이야기들, 그리고 구조라에 뒤엉킨 지역사는 뼈아픈 기록이 많다. 왜적 침입으로 아픈 기억을 떠안았다. 최근에는 구조라 어민 등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구조라항 앞바다에서 해상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일본과 가까운 지리 탓에 겪는 고충이 지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라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최석환 기자
가라산에 축조된 다대산성에서 바라본 풍경. /최석환 기자
거제 망치몽돌해수욕장. /최석환 기자

◇노자산 중턱 가을 명소와 맞닿은 가라산 등산로 = 거제 남동쪽 산비탈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거제 노자산(580m) 중턱에 자연휴양림이 있다. 규모만 32만 9490㎡에 이른다. 지난 1993년 동부면 구천리 산103번지 일대에 문을 연 이곳에는 단풍나무·참나무·고로쇠나무·노각나무·동백나무 등이 심겨있다. 다른 옷을 입은 나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숲속 길이 잘 닦여 있어서 여유롭게 거닐기 좋은 장소다. 숲길은 거대한 터널을 이룬다. 단풍이 없어도 이곳의 가을은 환하다.

숙박 시설과 야영장, 놀이터 등 부대시설도 갖추고 있는 곳이어서, 가족 단위 방문객이 적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한 해 7만~8만 명이 거제자연휴양림을 찾았다고 한다. 학동고개에서 노자산 정상을 연결하는 1.56km 구간 케이블카(거제 파노라마 케이블카)도 인근에 있다. 상노자산과 다도해 전경을 감상하고자 하는 방문객이라면 찾아볼 만한 곳이다.

휴양림 안팎으로는 등산로가 나 있다. 자연휴양림에서 곧장 노자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 맞닿아있는 또 다른 산인 가라산(580m)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까지 두 갈래다. 노자산도 그렇지만, 가라산에서 거대한 암석 덩어리인 망등 아랫부분에 이르면 한려수도 여러 섬을 조망할 수 있다. 뱀처럼 길게 생겼다는 장사도,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라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비진도를 비롯해 죽도, 추봉도, 용초도 등이 산에서 훤히 보인다.

거제 가라산 밑 풍경. /한국관광공사

가라산 산등성이에서는 돌로 쌓은 성곽도 드문드문 고개를 내민다. 남부면 다대리에 있는 다대산성(둘레 444m)이다. 허허벌판에 무너진 채로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만, 그리 보여도 엄연한 지정문화재다.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여기서 밑을 내려다보면 다대마을과 다포마을, 대한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상당 부분 무너져내린 구간이 많아 원형을 찾아보긴 어렵다. 산성 뒤로는 가라산 봉수대가 있고, 지역 행정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인 치소성(治所城)이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거제 다대산성. /최석환 기자

※길라잡이
남파랑길 22~23코스는 산자락을 훑는 구간이 많다. 이 산 저 산 오르내리는 게 코스 대부분을 차지한다. 22코스는 13.4㎞(소요 시간 5시간 30분), 23코스는 9.5㎞(소요 시간 6시간) 거리다. 구조라항, 구조라해수욕장, 망치몽돌해수욕장을 지나 등산로로 진입하면 한려해상국립공원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파른 등산로가 있어 난도가 높은 구간이다. 학동고개에서 명사 해변까지 이어지는 구간 역시 거제 해안 경관을 감상하기 좋은 코스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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