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29일 법정기념일 지방자치의 날
창원시 내서읍 주민들 1998년 모임 결성
예비군훈련장 이전 반대 등 지역 개선 노력
정체성 지키며 꾸준히 성장·생활정치 참여
"경남서 20여 년 세월 존재 자체로 큰 의미"

지방자치제도가 올해 31주년을 맞았다. 지역소멸·균형발전이 화두인 시대, 지방자치의 날(10월 29일)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자치는 지역소멸을 막고 균형발전을 이룰 밑바탕이어서다. 10회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24년 동안 주민자치를 실현하고자 힘쓰는 곳이 있다. 푸른내서주민회다.

◇내서에 뿌리 내린 주민자치 =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사는 시민이 꾸린 푸른내서주민회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주민자치·지역공동체 단체다.

마산 푸른내서주민회가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17일 광려천 쓰레기 되가져가기 캠페인을 했다.  /푸른내서주민회 제공
마산 푸른내서주민회가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광려천 쓰레기 되가져가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시작은 1998년, 농촌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2만여 명이던 인구가 7만 명으로 늘어나면서다. 이주해 온 20~30대 주민들은 생활정치·주민자치를 이뤄보자고 뭉쳤다. 이듬해 푸른내서주민회는 ‘동화 읽는 어른모임’과 ‘나눔회’ 두 동아리를 중심으로 길을 넓혀 갔다. 1회 푸른내서문화제를 열었고 광려천 대청소를 진행한 게 대표적이다. 이즈음 부마항쟁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상영, 알뜰장터, 송년의 밤 등도 이어갔다.

주민 힘으로 지역을 바꾸려는 노력도 더했다. 예비군훈련장 이전 반대, 음식물 쓰레기 사료화 공장 반대를 위한 사업 연대 등이다. 문화제는 자리를 잡았고 삶의 터전을 더 좋게 만들자는 주민 열망도 커갔다.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주민회 이름을 전면에 건 후보가 나오면서 회원 간 갈등이 깊어지기도 했다. ‘주민회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단체여야 한다’는 주장과 ‘실질적인 생활정치 구현’이라는 의견이 교차했다. 몇몇 회원은 주민회를 탈퇴했다.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행사는 안착했지만 회원교류사업이 부족하고 지역 현안에 더 깊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 푸른내서주민회가 13일 오전 내서읍 삼계근린공원에서 내서지역 자전거 도로 모니터링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내서지역 주민들이 누비자를 타고 출발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 푸른내서주민회가 내서읍 삼계근린공원에서 내서지역 자전거 도로 모니터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회원들은 꿋꿋이 제 길을 갔다. 2003년 갈등을 치유하며 새 각오를 다진 이듬해, 주민회는 ‘내서나들목 통행료 무료화’를 이루고자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책위원회도 구성했다. 통행료 무료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부산 방면으로 왕래하는 차량 통행료를 50% 내리는 성과도 거뒀다. 무엇보다 ‘지역 문제는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겼다.

학교급식 조례 제정, 조두남기념관 건립 반대운동 등에 연대하고 아파트문화연구회 등 동아리 활동 폭을 넓히며 2005년 ‘한 달 회비 100여만 원’을 달성했다. 2006년에는 많은 회원이 직·간접적으로 지방선거와 연결되면서 내서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체로 성장했다. 일상 활동을 넘어 지역현안 해결에 앞장섰던 주민회와 이를 향한 신뢰가 지역민 정치적 성향까지 바꾼 것이다.

2007년 주민회는 사무실과 상근자 문제를 해결했다. 상시로 모일 수 있는 공간, 일상적 활동을 할 실무자를 갖춘 주민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08년~2017년 주민회는 인적·물적 성장기였다. 운영위원회를 월 1회 정례화해 동아리별 활동을 공유하고 사업을 심의했다.

푸른내서주민회가 연 알뜰장터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푸른내서주민회가 연 알뜰장터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경남도·낙동강유역환경청 보조금을 받아 환경 지킴이 역할도 하고, 작은도서관과 연계한 활동도 했다. 2013년 회원 300명 돌파, 2015년 학교 무상급식 회복운동과 홍준표 도지사 주민소환운동, 2017년 아름드리목공협동조합 출범, 2018년 창립 20주년 행사도 성장기에 남긴 기록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춤했던 주민회는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독서·미싱·볼링·등산·사회적경제 등 동아리 모임으로 주민자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 간다’는 기본은 잊지 않았다.

◇지방자치 밑바탕 = “풀뿌리 공동체 운동이 미미했던 경남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굳건히 지켜온 주민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민희(51) 전 푸른내서주민회 회장은 몇 년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되새겼다. 그는 ‘변방이 세상을 바꾼다. 더 강고하게 지역으로’라는 방향성을 제시하며 2016년부터 3년여 동안 주민회를 이끌었다.

푸른내서문화제 마당극 공연.
푸른내서문화제 마당극 공연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이 전 회장은 “지방자치는 길게 이어가야 하고, 주민회는 서서히 지역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고 본다”며 “관에서 주도하는 마을 만들기 등은 사업색이 짙지만 주민회 활동은 생활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푸른내서주민회는 ‘B급’을 지향하는데, 조직적 규율을 너무 중시하거나 지나치게 고된 운영을 경계하고 있다”며 “지방자치 뿌리인 주민회는 스스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참여 행사 폭을 넓히고 삶과 연관된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기본 역할”이라고 했다.

이 전 회장은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는 주민회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에 의견도 밝혔다. 푸른내서주민회를 놓고는 ‘진보 성향의 정치색이 짙어 보수 성향의 주민과 협력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는 주민회 정체성이 지방자치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며, “주민회는 자기 정체성이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이어가기 어렵다”며 “정확한 지향점을 품고 사안별로 다양한 조직과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광역의원 선거가 정당이 아닌 각 주민회·단체를 중심으로 치러진다면, 삶과 밀접한 문제가 더 폭넓게 논의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역 변화·발전은 결국 주민자치에 바탕을 둔, 정체성이 맞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상호 협의·합의로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다.

푸른내서주민회 앞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공동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교통·문화·교육·환경·복지·자치·나눔 등 문제를 함께 풀어가자는 의지다. 지역사회 작은 실천이 지방자치를 꽃피운다는 일념으로 주민회는 성장 중이다.

/이창언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