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갇혀 굶어 죽거나 파묻히기도
김해 쉼터 철거에 공공급식소 설치 제안
창원 현장서도 구조·이주·방사 이어져

주택재개발, 재건축, 도시환경정비 등 도심에서 잇따르는 각종 사업과 공사로 길고양이는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아 낡은 집에 숨어 있다가 그대로 묻혀 목숨을 잃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도시를 개발하는 데 동물의 생명 보호, 안전 보장을 꾀하는 일은 뒷전입니다. 경남 안팎 사례와 조례 등 규정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보면서 도심 속 동물과 공존 방안을 모색해봅니다.

버려지거나 다친 개와 길고양이를 구조해 보살피는 김해유기동물협회 '더 공존'은 최근 김해시 주촌면 동선마을에 있던 쉼터 1곳을 잃었다. 쉼터가 새 주택건설사업 예정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길고양이를 돌보기도 했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캣대디'가 먹이를 주고 보살피던 곳이었다.

◇길고양이 갈 곳은 야산뿐 = 주촌면 선지리 452-1번지 일원에서 추진 중인 이 아파트는 올 5월 말 사업계획이 승인됐고, 기존 건축물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착공 계획이 김해시로 제출될 예정이다.

이달 중순 동선마을을 둘러봤더니 '공존' 활동가들이 오갔던 쉼터 주변으로는 여러 집이 뜯겨 있었고, 쉼터는 반쯤 흙에 묻혀 있었다. 동쪽으로 아파트 단지인 주촌두산위브더제니스(851가구)가 보였다.

마을 남쪽에는 김해센텀두산위브더제니스(3435가구)와 코스트코 김해점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e편한세상주촌더프리미어(992가구)가 2025년 말 들어설 예정이다. 마을에 있던 길고양이들은 이제 갈 곳이 북쪽 경운산 자락뿐이다.

'공존' 리더 서갑생(59) 씨는 "이 동네 고양이 밥 자리만 10곳이다. 모두 세기 어려울 만큼 길고양이가 많아 한 번에 30㎏씩 밥을 줄 정도"라고 운을 뗐다. 그는 "사전에 쉼터 철거 통보를 받았고, 올 8~9월부터 건물을 뜯어내면서부터는 불안했다"며 "앞으로 공사가 본격화하면 대형 화물차가 더 다닐 텐데, 고양이한테는 위협이 된다. 로드킬도 빈번하고 밥 자리를 못 찾아 굶어 죽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 씨는 "이런 개발 지역에는 김해시가 공공급식소를 설치했으면 한다. 그러면 주민과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며 "지자체 동물복지가 퇴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해유기동물협회 '더 공존'이 기존에 쓰던 주촌면 동선마을 길고양이 쉼터 1곳(붉은 색 지붕)이 주택건설사업으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이동욱 기자
김해유기동물협회 '더 공존'이 기존에 쓰던 주촌면 동선마을 길고양이 쉼터 1곳(붉은 색 지붕)이 주택건설사업으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이동욱 기자

◇지자체 공사현장 구조에 무관심 = 동물보호법에 따라 도심지나 주택가 개체 수를 조절하는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은 지자체마다 추진되고 있다. 김해시 축산과는 올해 750마리(상반기 540마리·하반기 210마리)가 목표다. 주택재개발 지역을 포함한 주촌면에서는 길고양이가 많다는 민원이 있어 올해만 지금까지 60마리를 대상으로 중성화 수술이 이뤄졌다.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도 중성화 사업이 진행된다. 물론 여기에 자치단체 지원이 있지만, 위험한 공사 현장에서 구조하고 안전한 곳으로 유인하는 것은 전적으로 활동가들의 몫이다. 지자체, 시행사, 건설사, 조합 측은 길고양이 구조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원에서는 힐스테이트마크로엔(대원1구역·951가구), 대원동 에일린의뜰(대원3구역·1470가구), 롯데캐슬센텀골드(양덕2구역·956가구), 롯데캐슬하버팰리스(양덕4구역·981가구) 등 최근 재건축·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길고양이 구조가 진행됐다.

최인숙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활동가는 "대원동 재건축 지역은 공사를 시작하면 인근 창원문성대 등으로 빠져나갈 곳이 있었지만, 신월주공 재건축 지역은 근처 백화점이 있고 사방이 막혀 나가기가 어려운 곳"이라면서 "중성화 이후 이주·방사할 곳을 찾는데, 워낙 개체수가 많아 여건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 활동가는 "중장비 업체 쪽 얘기로는 땅을 파면 밖으로 튀어나온다고 한다. 아깽이(아기 고양이)나 아픈 고양이는 무서우니 지하로 들어가는데, 공사 현장에 임시로 벽을 틈 없이 세워버리니 빠져나오지 못하고 파묻히기도 한다"며 "시공사 쪽에는 고양이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이동 통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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