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협회 창원지회 수어학당 현장
수업 땐 음성언어 금지, 수어로만 소통
참가자 "일종의 제2 외국어로 인식"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수업이 열렸다. 옆 사무실에서 벽을 뚫고 드럼 치는 소리가 넘어왔지만, 수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허공을 가르는 손짓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으니까.
지난 18일 창원시 성산구 경남농아인협회 창원시창원지회 강의실에서 수어학당 중급반이 열렸다. 수업이 시작되자 손은선(56) 강사는 하얀색 칠판 위에 '수업 시간에는 음성언어 사용 금지. 수어와 비수지 기호로 대화합시다'라고 쓰인 문장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침묵이 교실을 채우는 동안 모두들 손바닥을 접었다 펴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댔다. 지난 강의에서 배운 단어 복습이다.

18일 오후 수어학당 중급반 수업에서 손은선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수어를 알려주고 있다. /김다솜 기자
18일 오후 수어학당 중급반 수업에서 손은선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수어를 알려주고 있다. /김다솜 기자

'비싸다'는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동전 모양을 만들어 반대 손바닥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면 된다. 반대 손바닥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면 '깎다'는 의미. 이번에는 '결혼'이 나왔다. 약지와 엄지를 맞부딪치면 된다. 약지와 엄지를 떨어트리면 '이혼'이 된다.

새로운 단어가 나왔다. '너한테 반했다'는 손가락을 상대방에게 콕 찍는 동작으로 전달할 수 있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지만, 손동작으로 서로를 보다가 웃음이 터진다. 수강생 한 명이 "아! 내가 너 찍었다는 거네!"라고 했기 때문.

창원지회는 1997년부터 수어학당을 운영해왔다. 수어학당은 1년에 세 번 열린다.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뉘는데 최소 수강인원 5명을 채워야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수강 기간은 3개월이며, 초급반(7만 원), 중급반(10만 원), 고급반(13만 원) 수준별로 수강료가 다르다.
 

수어는 세심하다. 손동작의 속도, 반경, 모양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음성언어는 발음이나 억양으로 강조점을 두지만, 수어는 표정으로 표현한다. 밥 먹었느냐고 물을 때는 눈썹을 올리고, 먹었다고 답을 할 때는 무심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윤소연(28·창원시 의창구 북면) 씨는 초급반 3개월을 거쳐 중급반 수강 한 달째다. 그는 "잘못했다가는 수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으니 배울 때 잘 보고, 잘 기억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어는 음성언어와 달리 시각으로 전하는 언어다. 수강생들은 영어와 일본어를 익히듯 수어도 제2외국어처럼 새로운 소통 방식의 하나라 여기고 있다.
최유리 경남농아인협회 창원시창원지회 간사는 "청인은 청각 중심이지만, 농아인은 시각 중심이라서 서로 의사소통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시각 중심의 농아인 문화를 존중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어는 누가 어떤 이유로 배울까. 최 간사는 "수어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고 싶은 분들이 많이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수어를 익히면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수강생들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윤 씨는 뚜렷한 목적 없이 배움을 시작했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장애인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서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하는데 일상에서 장애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라며 "언젠가 만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수어라는 언어라도 배워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수경(38·의창구 소계동) 씨는 수어 노래를 배울 때 즐거웠던 기억이 이끌어줬다고 했다. 수어를 배운 지 벌써 3년. 언젠가 수어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가져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심 씨는 "지금 경남농아인협회 직원의 장애인 근로지원인으로 일하고 있는데 짧은 단어로나마 수어로 소통하고 있다"며 "장애인이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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