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킹덤' 계기 외국에선 주문 '대박'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 유적서도 유사 형태 발견
조선 중기 흑립 모양 정착 조선 말 중절모에 밀려
선명하고 맑은 검은색 선과 선 겹쳐 조형미 이뤄

조선 정조 임금 시절 함양 안의현 연상각. 봄날 밤의 달빛이 정자 옆 작은 못의 물에 반사되어 기와 끝에서 일렁거린다. 기와 아래로 선비 세 사람이 의관을 정제하고 둘러앉아 ‘미(未)’를 첫 번째 운자로 띄우고 시를 짓는다.

연암 박지원이 먼저 시구를 읊는다. “포변이 주나라 때 만든 거면(布弁周製歟)/ 죽관은 한나라 때 의식일까(竹冠漢儀未).” 바로 이어서 청장 이덕무가 받는다. “금화모는 우아한 멋 다하고(金華輸雅致)/ 청약립은 시골 멋이 넘치네(靑篛饒風味).” 이덕무의 시를 가만히 듣던 영재 유득공도 질세라 상기된 목소리로 밤공기를 가른다. “백방립은 경아전의 근심거리요(白方畿吏愁)/ 골소다는 고구려에서 귀하게 여겼지(骨多麗朝貴).”

모두 갓에 관한 이야기다. 세 사람의 오언절구는 끝이 없다. 듣다 보니 갓의 매력이 절로 확인되는 듯하다. “둥근 갓 양태는 부처의 광배 같고(旁圓佛放光)/ 볼록한 갓 모자 의서에 그려진 위 같네(中凸醫畵胃)” 하고 박지원이 읊으면 유득공이 또 다른 매력을 내세운다. “성한 갓과 찌부러진 갓은 실로 범군과 초왕 같고(成虧眞凡楚)/ 좋은 갓과 거친 갓은 때로 경수와 위수 같네(精粗或涇渭).”

2015년 5월 경남민속예술축제에 출연한 밀양학춤 연희자가 갓을 쓴 채 춤을 추고 있다./정현수 기자

그렇다고 갓에 대한 좋은 말만 읊는 것도 아니다. “벽에 붙어 기대기에 불편하고(襯壁倚不便)/ 문미(門楣)를 지날 땐 부딪칠까 두렵네(過楣觸可畏)” 하고 박지원이 인상을 쓴다.

박지원의 <연암집>에 나오는 이야기를 살짝 각색해보았다. 이 내용은 유득공의 <영재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 중에 갓을 써본 이는 얼마나 될까. 어쩌면 영화나 연극, 국악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임에도 그것을 쓰고 출퇴근하거나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지원 말처럼, 쓰고 벽에 기대기 불편해서일까. 사실, 갓이라는 모자를 가만히 보면 멋진 구석이 제법 많은 물건이다. 오죽하면 넷플릭스 영화 <킹덤> 등장인물들이 쓴 갓에 외국 시청자들이 크게 반응을 보였고 갓은 덩달아 대박 난 상품이 되기도 했다. 조선 선비들이 썼다는 갓, 갓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2014년 9월 선신대제 재현 행사에서 선비로 분장한 배우들이 갓을 쓰고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마산문화원
2014년 9월 선신대제 재현 행사에서 선비로 분장한 배우들이 갓을 쓰고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마산문화원

◇조선의 선비들만 썼다고? =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갓, 즉 조선 시대 선비들이 썼다는 ‘흑립(黑笠)’은 조선 중기 때 형성된 디자인이다. 하지만 갓 형태를 갖춘 모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한다. 북한 남포에 있는 감신총에 패랭이 형태의 모자를 쓴 그림이 있다고 하고 신라 때 유적인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입형백화피모(笠形白樺皮帽)’는 갓의 시초 형태로 보고 있다. 고려 때엔 관리들의 관모로 제정되기도 했던 갓은 서서히 관직이나 신분을 나타내는 물건으로 변화했다.

공민왕 때에는 문무백관에게 갓을 쓰게 했고 정3품 이하 관원에게는 각 품 수에 따라 백옥, 청옥, 수정 등으로 장식된 흑립을 착용하게 했다. 물론 이때 흑립은 조선 때의 흑립과 디자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 조선의 갓은 고려말에서부터 패랭이, 초립의 단계를 거쳐 흑립으로 발전했다.

◇‘단발령’에 ‘오마이갓’ = 단발령은 1895년 고종 32년에 반포됐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신앙처럼 여기고 있던 조선의 사대부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국가 시행령이었다. 상투를 자르느니 목숨을 자르겠다며 강렬한 반발도 일었지만 이미 들어온 외국 문물이 우리네 인식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었던 터라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임금부터 모범을 보인다고 싹둑 자른 머리 모양으로 사진까지 찍으며 홍보하자 점차 이를 따르는 선비들도 늘었다.

상투가 없는 머리에 갓이 무슨 소용일까. 갓은 상투 머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자였다. 갓 대신에 형태가 유사한 중절모로 밀물과 썰물의 변화를 보였던 시기가 일제강점기였다.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중절모에 두루마기 차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 익숙해서 그런지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중절모가 갓을 완전히 대신하지는 못했다. 저잣거리 주먹들마저 중절모를 쓰고 행패를 부렸으니, 중절모가 어느 정도 갓의 대체재이긴 했어도 갓이 지닌 기풍을 이어가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김해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삿갓./정현수 기자
김해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삿갓./정현수 기자

◇갓이 검은 이유는 = 흔히 갓이라고 통칭해서 부르는 ‘흑립’은 말총, 즉 말꼬리로 만든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와 섞어서 만든다. 조선 때에는 모자 부분과 양태(그늘을 가리는 둥근 부분)를 따로 제작해 조립했다. 갓에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다. 양태는 머리카락만큼이나 가는 대나무실을 씨실과 날실로 엮고, 그 사이에 비스듬히 빗대를 꽂아 견고하게 만든다. 조선의 장인들은 그 위에 명주실이나 비단을 올리는 방법으로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재료만으로 갓이 검다 할 수는 없겠다. 사실은 이렇게 만든 갓에 먹칠과 옻칠을 여러 번 해서 선명하고 맑은 검은색을 띠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선과 선이 겹치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내고 가는 대나무 사이로 빛이 들어와 아른거리는 색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모습은 양태의 곡선과 어울려 완벽한 조형미를 이룬다 하겠다.

◇갓이라고 다 검은 것은 아니다 = 기본적으로는 갓이 검은색을 띠고 있다. 하지만 붉은 갓도 있다. 붉은 갓은 무관이 관복을 입을 때 착용했고 흰 갓은 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쓴다. 갓과 형태가 비슷하지만 굵은 대나무로 만든 패랭이는 평민들과 신분이 낮은 군인, 보부상 등이 주로 착용했고 삿갓은 갈대나 대오리로 만든 것으로 비나 볕을 피하고자 ‘김삿갓’ 같은 인물이 쓰고 다니기도 했지만 대개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 가리기 용으로 많이 썼다. 또 풀로 엮어 만든 초립은 고려에서 조선 초기까지 왕뿐만 아니라 양반, 평민 모두 착용했던 모자다. 이 외에도 조선 시대에 머리에 썼던 모자는 사방관, 정자관, 탕건 등이 있고, 상투 튼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망건, 망건 착용할 때 이마의 중앙에 다는 장식품 풍잠 등이 있다.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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