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정 13회 개인전 '공존' 루시다갤러리
호랑이와 얼룩말 등장 여백있는 묘사 탁월
초현실주의 화법 추구... 생명과 자연 탐구

얼룩말과 호랑이,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초현실주의 화법을 추구하는 노혜정(53) 화가를 지난 23일 진주 루시다갤러리에서 만났다. 그의 13회 개인전 ‘공존(COEXIST)’이 21일 개막해 내달 4일까지 루시다갤러리에서 이어진다.

노혜경 화가를 23일 진주 루시다갤러리에서 만났다. 13회 개인전 '공존(COEXIST)'이 내달 4일까지 이어진다. /박정연 기자
노혜경 화가를 23일 진주 루시다갤러리에서 만났다. 13회 개인전 '공존(COEXIST)'이 내달 4일까지 이어진다. /박정연 기자

 

◇수평적 공존을 꿈꾸며 = 노혜정의 그림 속 백호는 단잠에 빠져 있다. 상위 포식자 호랑이를 지긋이 바라보는 얼룩말 또한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현실 속 자연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는 “작품 안에 들어와 있는 얼룩말과 호랑이는 상극이라는 생태학적 속성과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의 수평적 공존 관계를 상징하는 개체다”며 “평화롭게 응시하는 저들의 시선 끝에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늘 궁금하다”고 말했다.

캔버스를 벗어난 현실, 동물원에 있는 백호는 인간이 만들어 낸 비극적 산물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호랑이는 보통 주황색 털에 짙은 선이 있는 벵골호랑이다. 반면 근친교배를 통해 태어난 백호는 열성 유전자로 흰색 털을 얻는다. 인간은 호기심을 자극하고자 백호라는 상품을 만들고 자연 질서를 벗어난 방식을 유지한다.

노 작가는 “야생에서 우리는 결코 백호를 만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든 동물원에만 갇혀 있는 존재다”며 “새끼 백호 중에는 얼굴이 틀어진다거나 하는 기형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처분되어 사라지고 겉으로 온전해 보이는 백호만 살려서 사육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노혜정 작 '공존(coexist)' 시리즈. /루시다갤러리
노혜정 작 '공존(coexist)' 시리즈. /루시다갤러리

 

◇자연 가까이 놀며 그렸던 유년 시절 = 노혜정이 태어난 곳은 서울, 현재 사는 곳은 부모의 고향 진주다. 청춘을 불태운 마음의 고향은 마산이라 말한다.

초등학교까지는 서울에서 다녔지만 중고교는 진주에서 다녔다. 진주 삼현여고를 졸업한 이후 경남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작품으로 1996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부문에 입상했고, 경남청년작가상(2009)·마산미술인창작상(2011)에 이어 2017년 동서미술상 영예를 안았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12년 경남도립미술관이 주최한 현역작가 초대전으로 ‘생명과 진화’라는 전시를 열었을 때다.

“벌써 10년 전이네요. 선인장을 모티브로 회화 작품을 주로 선보였고, 학예사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퍼포먼스 전시로 조각 작업을 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남습니다. 저에게는 지역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긍정적인 원동력이 된 굉장히 의미 있는 전시였습니다.”

노 작가는 2013년 연로한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고자 진주로 작업실을 옮기기 전까지 줄곧 마산·창원에서 전시를 했고, 현재도 마산미협 소속 회원으로 진주와 창원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꽃이나 나무, 풀잎들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부친 영향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지리산 근처에서 사업을 하셨는데 방학 때면 자주 시간을 내어 등산도 같이 하고 중간마다 숨을 고르며 스케치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셨는데, 돌아보니 당신께 선물한 그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젊은 날 아버지를 기억하며 만개한 꽃을 그려 병실에 걸어 드렸어요. 몇 해 전 돌아가셨지만, 아이처럼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노혜정 작 '공존(coexist)' 시리즈. /루시다갤러리
노혜정 작 '공존(coexist)' 시리즈. /루시다갤러리

 

◇아침마다 향하는 작업실, 영혼의 안식처 = 그는 ‘나인 투 식스(9 to 6)’,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라는 작업 원칙을 갖고 있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마음이 힘들어 잠시 작업을 중단한 시기 외에는 매일 도시락을 싸서 작업실에 나갑니다. 대신 SBS 을 방영하는 일요일에는, 방송을 챙겨 보고 작업실로 향합니다.(웃음) 점심을 먹는 1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8시간 정도 그리는 노동을 하지요. 물론 중간마다 잡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하루 5시간 이상은 붓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여백이 많다. 가축으로 키울 수 없는 야생성이 강한 동물들, 호랑이·얼룩말·코끼리 등이 등장하지만 평온하고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예전 제 작품을 보면 좀 어둡습니다. 최근작을 본 사람들이 그림이 많이 밝아졌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마음 상태나 작업 공간이 주는 변화가 반영된 것 같습니다. 반지하 공간에 있던 작업실을 벗어나 최근 햇볕이 온전히 드는 작업실로 옮겼더니 광합성도 저절로 되고 우울감도 차츰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2005년 마산 대우갤러리에서 진행한 첫 개인전 ‘생성’ 이후 열세 번째 개인전 ‘공존’에 이르기까지 노혜정은 생명과 자연을 탐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달 말에는 통영아트페어에 참여하고, 내달 1일에는 마산현대미술관 소속 작가로서 신작전을 펼친다. 11월에는 진주 극단 현장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도 작품을 선보이고, 대구아트페어 준비 등 하루하루를 금쪽같이 보내고 있다.

“마음은 여전히 청년인데 세월이 흘러 어느덧 중견작가 그룹에 속하게 됐습니다. 12살에 처음 붓을 잡던 그 순간의 떨림이 지금도 또렷한데, 10년 뒤에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매일 작업실을 향하고 싶습니다. 늘 변화를 꿈꾸며 천천히 진화하는 노혜정이 되겠습니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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