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린 시절 만난 이야기
고민 나누며 상실 보듬고 성장
가을날 따뜻한 위로 주는 작품

넬리는 어느 날 숲 속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과 만난다. 영화 <쁘띠마망> 속 한 장면. /갈무리

작년 이맘때, 필자는 작은 영화 하나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었다. 작업은 생각보다 더뎠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투성이였다. 작업을 위해 늘 오갔던 길에는 플라타너스가 울창했다. 푸르던 잎이 낙엽이 되고 바닥에 굴러 바스러질 때까지 작업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볕이 유난히 따뜻하고 바람은 계절보다 강하던 날, 쉬기로 했다. 발길을 돌려 작은 영화관으로 향했다.

요양원을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아이가 있다.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모든 할머니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햇살 같은 소녀 ‘넬리’. 넬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넬리와 엄마 ‘마리옹’은 요양원 식구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후 할머니 유품 정리를 위해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된 넬리네 가족. 엄마는 빨리 할머니댁을 떠나길 바랐지만 넬리는 엄마의 어린 시절 흔적이 가득한 할머니 댁에 마음을 빼앗긴다. 넬리는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노력하지만 늘 우울감에 시달리는 엄마는 넬리와 아빠를 남겨두고 훌쩍 떠나 버린다.

엄마가 떠난 날, 엄마 일기장에서 봤던 숲속 오두막을 찾아 나선 넬리는 그곳에서 엄마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 ‘마리옹’을 만난다. 서로 똑 닮은 외모를 가진 두 소녀는 금세 가까워지고 매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마리옹의 집으로 들어선 넬리는 깜짝 놀란다. 마리옹의 집은 넬리 할머니 집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넬리는 엄마의 과거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깨닫게 되고 마리옹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다. 마리옹은 유전병으로 인한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마리옹의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두려움을 넬리에게 털어놓는다. 넬리는 마리옹에게 엄마의 우울함이 자신 때문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소녀들은 함께 보트를 타고, 오두막을 장식하고, 케이크를 만들고, 생일파티를 하며 서로의 유대를 확인한다.

<쁘띠마망> 속 넬리와 마리옹은 실제 쌍둥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함을 전해준다. /갈무리

<쁘띠마망>을 번역하면 ‘작은엄마’라는 뜻이다. 넬리가 작은엄마 마리옹을 만나 가족 간의 연대를 확인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처음부터 엄마이지 않았던 엄마와 딸로서의 역할을 배워가고 있는 딸의 사적인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 시종일관 잔잔한 영화이지만 그 속에는 환상적인 요소들과 마음을 건드리는 예쁜 대사들, 지금의 계절에 꼭 맞는 미장센이 곳곳에 널려있다. 아이들이 신고 있는 양말, 작은 머리띠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살펴 본 감독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전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때문에 그녀의 후속작인 <쁘띠마망> 또한 높은 기대 속에 개봉을 했고 영화배우 소지섭이 공동 제공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되었다. 영화에서 넬리와 마리옹을 연기한 배우는 실제 쌍둥이다. 감독이 아역배우를 캐스팅할 때 태어난 날이 같음이 세대 간의 수직적인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 같아 좋았다는 캐스팅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한 가을을 보내고 있던 필자에게 <쁘띠마망>은 잠깐의 휴식과 큰 위로를 안겨주었다. 영화를 본 후 길거리에 부서져 흩어진 낙엽도 금빛으로 빛났다. 갑자기 추워진 이 계절에 따뜻한 포옹이 필요한 독자께 꼭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며 소녀들이 나누는 고민의 매듭이 어떻게 풀어져 가는지 지켜보는 따뜻한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조이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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