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종이보다 자연친화적 재사용 가능
한국의 미 담긴 보자기아트 공예품 각광

‘포용의 철학’이 담긴 보자기. 모든 걸 감쌀 수 있다. 옛 시절 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메면 책보, 밥상 위 온기를 덮으면 밥상보, 아이를 등에 업으면 포대기로 무엇이든 감쌌다.

보자기는 자연 친화적이다. 친환경 포장지이자 한국의 미까지 담은 멋스런 포장재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주세롬(42) 채울보자기 대표를 지난 15일 김해시 어방동에 있는 채울보자기 공방에서 만났다. 실생활에서 보자기를 활용한 포장 방법을 익히고, ‘보자기아트’ 세계를 맛보는 시간을 보냈다.

보자기를 활용한 다양한 매듭의 포장법. /박정연 기자
보자기를 활용한 다양한 매듭의 포장법. /박정연 기자

 

◇친환경·재사용 포장지 활용 = 보자기의 ‘보(褓)’는 ‘복을 싸서 선물하다’, ‘본연의 것(허물)을 감싸주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물잔과 수저를 내놓는 순간 적지 않은 감동을 한 경험이 있다. 수저를 감싸고 있는 백색의 작은 천 때문이었는데, 식당이름이 새겨진 종이 포장이 아닌 새로움에 놀랐고 종이 사용을 줄인다는 주인장의 말에 경의를 표했다. 또 다른 날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생일 선물을 받아 왔는데 형형색색의 포장지 사이에 단연 눈에 띄는 형태로 아이보리색 손수건으로 묶인 선물이었다. 그 안에는 초콜릿이 아닌 약과가 들어 있었고, 선물 카드에는 순면으로 감싼 포장지는 버리지 않고 아이들이 손을 씻고 손수건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손님을 환대하고, 친구에게 축하를 하는 선물 같은 순간에 만난 종이가 아닌 천, 일회용품이 아닌 재활용 가능한 보자기 사용은 가치 있는 생활 신념으로 보였다.

주세롬 채울보자기 대표. /박정연 기자
주세롬 채울보자기 대표. /박정연 기자

 

주 대표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면서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보자기와 지구 살리기를 연결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위생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일회용 포장지가 넘쳐나는 때에 재사용을 시도하는 보자기 강의안을 만들어 활동했다”고 밝혔다.

이어 “보자기를 연구하다 보면 곳곳에 조상의 지혜가 녹아 있고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들의 삶이 엿보인다”며 “한번 접하고 나면 보자기만큼 사용이 편리하고 친환경적인 게 또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선물 포장 간단하고 멋스럽게 = 이날 주 대표와 함께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보자기 포장법을 3가지 실습했다.

먼저 직사각형의 작은 상자 포장부터 도전했는데, 한 권 정도의 책 포장도 거뜬한 간단한 포장법이다. 천은 각자의 취향이나 계절에 맞게 색을 고르면 된다. 이날은 나비와 꽃무늬가 있는 양단이라는 천을 골랐다. 우선 상자를 모서리 한쪽 끝에 위치해 놓고 1회전 돌린다. 돌리고 나서 왼쪽과 오른쪽 모서리를 가운데로 맞춰 접으면, 청첩장이나 초대장 봉투가 열린 상태의 모양이 갖춰진다. 나머지 모서리 위쪽까지 돌돌 말아 붉은색 끈으로 묶으면 끝이다.

양단 천을 활용해 작은 상자나 책을 포장하는 모습. /박정연 기자
양단 천을 활용해 작은 상자나 책을 포장하는 모습. /박정연 기자

 

다음으로 도시락 모양의 상자를 소창이라는 천으로 묶는 법을 배웠다. 소창은 예로부터 생과 사를 같이 하는 천이라고 불렸다. 소창은 기저귀 재료이자 수건·행주로 쓰기도 하고 죽고 나서 관을 묶는 끈으로도 쓰였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 가능한 이유는 통기성이 좋기 때문이다. 소창은 면사를 평직으로 성글게 짜기 때문에 일반 면과 다르게 구멍이 크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네모 테두리에 하늘색이 들어간 소창으로 상자를 동여매고 나면 뚜껑 부분에 두 개 리본이 생겼다.

소창 천을 활용해 도시락 모양 상자를 감싸고 있다. /박정연 기자
소창 천을 활용해 도시락 모양 상자를 감싸고 있다. /박정연 기자

 

끝으로 사각 티슈 통을 자투리 천을 활용해 꾸몄다. 팥죽색의 천 한 가운데에 상자를 놓는다. 양쪽 모서리를 토끼 귀 모양으로 잡아 올려 리본 묶기 형태로 묶고 반대편도 같이 하면 완성된다.

◇보자기아트 예술품으로 한 발짝 = 소중한 물건을 보자기로 감싸고 매듭을 짓는 공예적 요소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미를 알리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바를 정 모양의 정매듭부터 배색의 미를 강조한 궁중 매듭까지 매듭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오래전 보자기는 명주와 무명으로 만들어졌는데 염료가 풍부한 시대가 아니었어도 뚜렷하고 맑은 색감을 가진 원단의 보자기들은 아름다운 기품을 갖고 있다. 네모반듯한 보자기뿐 아니라 용도에 따라 귀퉁이에 끈을 달아 만들어 썼던 보자기까지 무궁무진하다.

김해 어방동에 있는 채울보자기 공방 내부. /박정연 기자
김해 어방동에 있는 채울보자기 공방 내부. /박정연 기자

 

주 대표는 “<킹덤>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나서 갓을 찾는 외국인이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겠지만 다양한 매듭으로 귀한 선물을 포장하는 우리 전통 공예 중 하나인 보자기는 아트, 예술품이 되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한국보자기아트협회는 2017년 설립돼 한국의 보자기 문화를 세련된 감각으로 재해석해 보자기아트를 선보이는 예술인 모임이다. 주세롬 대표도 협회 회원으로 보자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편안함을 선물한다.

주 대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는 다양한 색을 찾고 연구하며 보자기로 표현한다”며 “자연 친화적이고 나무와 꽃의 빛깔을 닮은 색으로 물건을 감싸다 보면 어느덧 나의 마음에도 상대의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라고 밝혔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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