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 취재 잔학성 알려
기념사업회 초대 회장 지내
1999년 경남도민일보 창간
토호언론 병폐 극복 동참해
경남 언론의 큰 어른이자 경남도민일보 초대 대표이사를 지낸 이순항 원로 언론인이 11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언론인으로서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았고, 3.15의거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을 맡아 지역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데도 일조했다.
마산 출신인 고인은 지역을 대표하는 원로 언론인이었다. 1956년 부산일보 마산특파원을 시작으로 1971~1973년 경남매일신문(현 경남신문) 편집국장, 기획실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1980년대 1도 1사 시절에는 마산상공회의소에서 일하다 1988년 남도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경남매일신문 사장, 1999년에는 경남도민일보 초대 대표이사를 지냈다.
특히, 이 전 대표이사의 삶은 3.15 민주항쟁과 궤를 같이했다.
3.15의거 당시 부산일보 마산특파원으로 일하며 투쟁현장을 누볐다. 그는 1960년 3월 15일~4월 27일 마산시민과 학생을 밀착 취재하며 경찰의 잔학성을 보도했다. 3월 15일 밤에는 총상자가 마산시청 세무과에 방치되자 마산시장을 만나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강력히 항의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3월 19~24일에는 3·15 투쟁 실상을 다룬 '나는 마산 소요를 목격했다'를 5회 연재했다. 이 밖에 이 전 대표이사는 김주열 열사 시신 사진을 촬영한 동료 기자와 동행하는 등 3.15의거 당시 주요 기사만 9차례 이상 쓰며 4.19혁명 발발 동력이 됐다.
민주주의를 꽃피우려는 그의 노력은 3.15의거기념사업회 창립으로 빛을 발했다. 문민정부 이후 마산에서는 3·15의거를 기념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태동했는데, 이순항 전 대표이사는 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을 맡아 재임 기간 3·15의거 관련 자료 발굴과 수집에 앞장섰다.
지난 2020년 3.15의거기념사업회 고문이었던 그는 3.15 민주항쟁과 부마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과 한국의 인권 향상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민주주의와 이 고문의 연결고리는 1999년 도민주주 신문 <경남도민일보> 창간으로 이어졌다. 이 고문은 1999년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2003년까지 <경남도민일보>를 이끌며 권력화된 토호언론의 병폐를 극복하는 데 힘썼다.
"창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에 예닐곱 명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막무가내로 사장을 맡아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나이도 많고 능력도 안 된다며 사양했는데 끝까지 물러서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창간까지만 책임지겠다며 맡은 대표이사직은 2003년까지 이어졌다. 생전 그는 그 기간을 '정론'과 '생존'을 움켜쥐며 전 구성원이 몸과 마음을 불살랐던 시기라고 추억했다.
경남도민일보 창간 20주년을 맞아 그는 "순탄할 때보다 어려울 때 극복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회사를 성장시켜줘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고맙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수필가로도 활약했던 이순항 전 대표이사의 저서로는 <3·15의 눈으로 보다>, 산문집<호랑이 눈썹을 달고 세상을 보자>, 시집<해질녘의 사색>, 회고록<남길 것 없는 사람 이순항 이야기> 등이 있다.
빈소는 SMG 연세병원 장례식장 203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13일 오전 9시. 장지는 창원시립화장장. 연락처 아들 이흥우(010 9336 8888).
/주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