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경남 ‘밖’ 가야유적 (5) 전북 남원 청계리고분군

남원 가야유적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보다 앞선 시기 무덤
아영분지 평야 조망되는 장소에 축조...중심 연대 5세기 전반

돌덧널무덤 11기 확인...야산 산비탈에 소형 무덤 다수 분포
1호분 무덤 지름 31m 대형 무덤...호남 최대규모 가야 고분

함안 아라가야 수레바퀴 장식 토기·왜 계통 나무 빗 등 출토
고령 대가야계 토기 출토 비율 높아...대외 교류상 오롯이

주민들 "밭 일구다 토기 조각 여럿 발견...국가문화재 지정을"
남원시, 이견 많아 고분군 대상 추가 조사·사적 지정 미계획

전북 남원 청계리고분군 원경. /남원시
전북 남원 청계리고분군 원경. 고분군 주변으로 아영면 소재 청계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남원시

대가야는 남강 상류인 남원 아영면 일대 지역을 먼저 확보하고 나서 섬진강수계와 금강수계 진출을 모색했다. 일찍이 남원에 그들의 흔적이 닿은 건 그 당시 가야인들이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로 봤기 때문이다. 토기 양식과 무덤 분포도를 볼 때 5세기 후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대가야 권역은 경북 고령을 넘어 황강수계에 있는 남원 운봉과 아영, 섬진강수계 하동, 남해안 여수, 금강수계 진안까지 뻗었다. 지금도 호남지역에 가면 가야를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 청계마을에도 가야가 있다. 가야시대 무덤 유적이 자리 잡은 이곳은 ‘가야 고분 마을’로 불린다. 전북 남동부 내륙 산악지대에 있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전라도 대표 가야유적이자 세계문화유산 등재 절차를 밟고 있는 대규모 무덤 유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가야 고분군이 분포해서다.

전북 남원 청계리고분군 전경. /남원시

마을에 있는 유적 이름은 청계리고분군이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남원 월산리고분군을 조망할 수 있는 야산에 입지하고 있다. 해발 770m 시리봉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에 위치한다. 고분 꼭대기에서 북쪽 옥잠봉(705.5m), 동쪽 연비산(843.1m), 동남쪽 오봉산(878.5m)으로 둘러싸인 아영분지 넓은 평야가 조망되는 장소다. 주변 유적에 비해 높은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청계리고분군에서 확인된 무덤은 11기다. 양식은 돌덧널무덤(석곽묘)다. 축조 중심연대는 5세기 전반이다. 남원 월산리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이 5세기 후반, 순천 운평리고분군이 5세기 말~6세기 초라는 점을 고려하면 호남 동부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 가야 무덤으로 평가된다.

청계리고분군 대형 봉토분. 호남지역 가야 무덤 유적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최석환 기자

1호분 무덤 지름은 31m, 높이는 5m다. 호남지역 가야계 고분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청계리고분군과 1~2㎞ 거리에 있는 월산리고분군 지름이 20m 내외라는 점, 유곡리와 두락리 32호분이 21m라는 점, 가야 대형 고총인 창녕 교동 7호분이 약 32m인 점을 볼 때 청계리고분군은 주변 유적과 가야 중심 고분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큰 규모라는 걸 알 수 있다.

청계리고분군 축조 방식이 특이하다. 산등성이 정상부 암반층 동쪽 사면이 ‘L’자 형태로 잘린 자리에 석곽과 봉분을 동시에 조영했다. 능선 꼭대기에 흙을 덧대 고분을 만들었다. 봉분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석재를 추가로 넣고 봉분을 보강했다. 반면 인접한 월산리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은 기반층을 ‘U’자 모습으로 굴착한 뒤 매장시설을 조성한 다음 여기에 성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청계리고분군은 일대 가야 고분군과 비교해 다른 기법으로 만들어진 유적인 셈이다.

전북 남원 청계리고분군에서 출토된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남원시
전북 남원 청계리고분군에서 출토된 바리모양 그릇받침. /남원시
청계리고분군에서 출토된 일본 계통 나무 빗. /남원시

2015년 전북대박물관이 시행한 일대 지표조사 과정에서 처음 소개된 청계리고분군에서는 지금까지 세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확인된 1호 석곽에서는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유개고배)·긴목 항아리(장경호)·바리모양 그릇받침(발형기대) 등 대가야계와 소가야계 토기가 다수 출토됐다. 대체로 대가야계 토기 출토 비율이 높았다.

꺽쇠와 관못, 나무 빗도 나왔다. 나무 빗은 묶은 머리를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도구로, 이는 야요이 시대부터 확인되는 일본계 유물이다. 호남지역 가야 무덤에서 출토된 건 이곳이 처음이다. 국내로 범위를 넓히면 부산 복천동 53호분, 김해 대성동 14호분,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고흥 야막고분에서 발굴된 바 있다. 이런 형태 나무 빗이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이 지역 정치세력은 왜와 교류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 아라가갸 대표 유물 중 하난인 수레바퀴 장식 토기 조각. 이 토기 유물이 청계리고분군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남원시

2호 석곽에서는 호남지역 가야 고분군 중 처음으로 함안 아라가야 대표 유물 중 하나인 수레바퀴 장식 토기가 발굴됐다. 함안 말이산고분군 4호분에서도 출토된 유물로, 고배 대각 위에 U자 모양으로 뿔잔 2개가 얹혀있고, 좌우에 흙으로 만든 수레바퀴가 부착된 아라가야계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밖에도 뚜껑·굽다리접시 등 대가야계, 긴목 항아리, 원통모양 그릇받침(통형기대) 등 아라가야계 토기, 중국 자기 조각 등이 청계리고분군에서 확인됐다.

2019년 5~12월 이 유적을 최초 발굴조사한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 관계자들은 청계리고분군이 호남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김주호 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출토유물을 봤을 때 남강 쪽에 있던 가야 세력이 아영분지에 자리 잡을 때 만든 고분으로 판단된다”며 “이 정도 규모 무덤을 만들 수 있는 노동력을 동원하고 고분 안에 유물을 부장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 권력 권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청계리고분군의 피장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배집단이라고 선뜻 얘기하긴 어렵지만, 입지나 규모로 봐서는 엘리트 집단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소재윤 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가야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 남원 유곡리와 두곡리 유적이라면, 가야 문화 시작점이 된 곳은 청계리고분군”이라고 했다. 이어 “아영분지에 있던 가야 세력은 여러 국가와 교류하며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그 과정을 거쳐 아영분지에서 하나의 문화를 이룬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청계리고분군 전경. 무덤 위로 잡목과 수풀, 돌들이 널브러져 있다. /최석환 기자
청계리고분군 일대. 마을주민들이 밭을 일궈놨다. /최석환 기자

지난 5일 오후 연구소 관계자들과 함께 찾은 청계리고분군은 조사 이전부터 유적 일대 도굴 흔적이 확인됐다. 야산 능선 사유화로 지속적인 경작과 민묘 조성이 더해져 유적 훼손이 이뤄진 모습도 보였다. 주민들은 고사리와 인삼 등을 키우는 농경지와 민묘를 일궈놓은 상태였다. 대형분 이외에 소형 무덤들은 야산 산비탈에서 눈에 띄었다.

이날 만난 청계마을 주민들은 산에서 밭을 일구다가 토기 조각이 발견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박상구(64) 씨는 “어려서부터 토기 조각이 동네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때는 문화재가 있어서 그런 거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박 씨는 “고분군이 있는 산에는 올라가서 놀던 기억밖에 없는데 나중에 문화재라는 걸 알게 돼서 놀랐다”라고 밝혔다.

윤현철(71) 청계마을 이장은 “화살촉이나 토기 같은 유물이 어릴 때 농사짓는 과정에서 많이 나왔는데, 지금이나 예전이나 고분군이 있는 산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옛날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분군이 있는 산이 묘를 쓰기 좋은 명당이라는 말이 많아서, 지금도 명당을 찾아 산에 오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어 “함안에서 나온 토기 유물이 동네에서 나왔다고 하니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있더라”라며 “(청계리고분군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

남원시는 사정상 청계리고분군을 대상으로 한 추가 조사나 사적 지정 계획은 잡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백옥종 시 학예연구사는 “중요한 유적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능선부로 갈수록 (땅 소유주 비협조 등) 조사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현재로서는 추가 조사 계획이 없다. 청계리고분군 주변에 있는 월산리고분군과 함께 사적으로 지정하는 것을 계획했으나 이견을 보이는 분들이 있어 현재는 중단한 상태”라고 했다.

/최석환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