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창원 오동동문화광장서 개최

“지리산 자락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강가나 바닷가에서, 어느 벌판에서 영문도 모른 채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학살 희생당한 그때의 처절하고 애절한 통곡 소리가 이곳 광장까지 들려오는 듯합니다.”

어느덧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2주기를 맞았다. 8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제6회 경상남도 합동 추모제가 열렸다. 심우태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의령유족회장이 축문을 읽어 내려갔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추모제를 찾았다. 굽은 허리로 먼 걸음을 옮긴 이들의 새하얀 머리 위로 가을 햇살이 내려앉았다. 유가족들은 흐린 눈으로 단상을 바라보면서 희생당한 가족들을 떠올렸다.

8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광장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는 제6회 경남 합동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김다솜 기자
8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광장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는 제6회 경남 합동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김다솜 기자

정효갑(80‧진주 이반성면) 씨는 아홉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 길로 떠나보내야 했다. 함안군 여향면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정 씨는 “어머니랑 모심기하고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을 태운 차가 지나가는 걸 봤는데 거기 우리 아버지는 없었다”며 “경찰이 조사하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죄지은 게 없다면서 떳떳하게 제 발로 찾아가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유가족들이 창원을 찾았다. 한인자(73‧인천 강화군) 씨는 두 살 때 이승만 정권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다. 한 씨는 “두 살 때 헤어져서 아버지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이렇게 난다”며 눈가를 닦아냈다.

임예희(74‧서울 서초구) 씨는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만 알고 서른 해를 살았다. 결혼하고 나서야 뒤늦게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50년 7월 2일 아침을 먹고 논매러 나간 길이 마지막이었다. 사복경찰의 손에 끌려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임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언니는 할머니 손에 크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며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고 농사만 짓던 우리 아버지가 보도연맹을 알고 그렇게 가셨겠느냐”고 되물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지난한 세월 동안 진실은 더디게나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진주 민간인 희생자 유해 현장 발굴이 있었고, 거창 사건 주요 유적지가 국가 등록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게 됐다. 창원 마산합포구 가포동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이 들어섰다.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은 ”진주 지역 유해발굴사업과 거창과 진주, 창녕에서 증언채록사업이 진행 중“이라며 ”올해 안으로 진주, 거창, 거제, 양산 사건 등에 관한 진실규명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는 12월 9일까지 진실규명 신청을 받고 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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