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경남 ‘밖’ 가야유적 (4) 경북 고령 운라산성

고령 북변 거점 성곽...신라 포섭 성산가야 방어 성격
월성마을·가남마을 뒤편 263.3m 야산 정상에 조성

성 전체 둘레 1.4㎞... 5세기 중엽 대가야인 축조 성곽
발굴 한 차례도 없었지만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

성곽 아래 대규모 무덤 유적 분포...고분수 500여 기
월산리고분군 간격 두고 산성과 같은 산맥에 조성

고령군, 중요유적 판단...자문 뒤 문화재 지정 검토키로
"내년 상반기 군 관방유적 정밀지표조사 먼저 진행"

지난달 30일 오후에 찾은 운라산성. 5세기 중엽 대가야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야 거점 산성 가운데 하나다. /최석환 기자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한국 고대사를 이끌었던 대가야는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한 방어망을 갖추고 있었다. 대가야 사람들은 국경 지역에 성을 쌓아 신라와 백제, 일본 등 외부 세력 침입에 대비했다. 자연 지형을 활용해 성곽을 둘렀다. 크고 작은 돌을 모아 성벽으로 삼았다.

외부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고자 권역별 경계 지점에 성곽을 쌓았다. 왕궁에는 왕과 왕족이 거주하는 궁궐을 빙 둘러싼 성(궁성)을 지었다. 국경과 궁성을 비롯해 도읍지를 감싸는 외성과 배후 산성으로 통하는 각 길목에는 촘촘하게 성곽을 만들어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대가야 성곽 분포도. /대가야박물관
대가야 성곽 분포도. /대가야박물관

현재까지 확인된 고령지역 성곽은 17개소다. 대가야궁성지와 월성리토성 등 2곳을 빼면 대가야 성곽들은 모두 산성이다. 험준한 산 지형을 이용해 만들어진 요새로, 대부분 대가야 번성기인 5~6세기에 지어졌다.

고령지역 성곽은 대가야 도읍지였던 대가야읍(5개소)에 가장 많다. 대가야궁성지와 주산성, 망산성, 본관리 옥산성 등이 분포한다.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가야시대 최초의 석축산성임이 확인된 주산성은 궁성과 함께 대가야 최후의 방패 역할을 했다. 대가야 중심지인 도성은 궁성지와 그 배후 주산 정상부에 있는 주산성이 짝을 이루는데, 궁성에서 생활하던 대가야 왕과 왕족, 귀족들은 유사시 주산성으로 피신해 외적과 대항했다.

경북 고령에 있는 운라산성. 일본 고고학자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가 일제강점기 때 촬영한 운라산성 일대. /국립중앙박물관

현재 고령지역 산성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지만, 북쪽 지역에 있는 성 가운데 거점 성곽으로 평가받는 운라산성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가야산에서 흘러내린 산맥에 걸쳐있는 이 유적은 대가야읍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면 방면으로 5km 떨어진 운수면 월산리 월성마을과 가남마을 뒤편 해발 263.3m 야산 정상에 위치한다.

운라산성은 대가야와 맞닿아있던 성주지역 성산가야 방어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가야국 일원이었던 성산가야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신라에 포섭된 까닭에 대가야는 이들을 손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대가천이 흐르는 북쪽 방면에 운라산성을 포함해 가야산성과 노고산성, 예리산성, 본관리 옥산성 등 산성 방어망을 짰다. 성주군 수륜면부터 고령군 운수면과 대가야읍 방면까지 성곽을 두른 것이다.

운라산성 일부 구간은 비교적 온전하게 유적이 남아있다. 무너진 흔적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대가야계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 /최석환 기자
운라산성 일부 구간은 비교적 온전하게 유적이 남아있다. 무너진 흔적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대가야계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 /최석환 기자

북서쪽 가야산에서 시작해 남동쪽으로 발달한 능선을 따라 가야산성~노고산성~예리산성~운라산성이 차례로 연결된다. 운라산성은 대가천 방면 최종 수비구역으로 주산성과 맞닿는다. 가야산성은 대가천 방어선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는 성, 옥산성은 운라산성에 딸린 큰 성을 방어하기 위해 주변에 쌓은 조그마한 성이었다.

동서쪽 사이 400m가량 떨어진 두 개의 봉우리를 각각 에워싼 내성(이중으로 쌓은 성의 안쪽 성)과 그 주위를 돌려 연결한 외성(성 바깥 쪽에 겹으로 둘러쌓은 성)으로 운라산성은 이루어져 있다. 둘레는 1.1㎞, 좌우 내성을 합한 전체 둘레는 1.4㎞다. 5세기 중엽 대가야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대부분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작은 돌과 흙을 다지는 방법(편축)으로 축조됐다. 일부 구간에서는 성벽 안팎을 돌로 쌓는 기법(협축)으로 만들어진 성벽도 확인된다. 내성은 돌을 쌓아 만든 테뫼식 석성으로, 테뫼식은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구축한 성벽을 뜻한다. 외성은 두 봉우리를 연결해 만든 포곡식 형태다. 성 내에 1개 혹은 그 이상의 계곡을 끼고 그 주위를 감싼 산줄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성벽이다. 북쪽과 서쪽은 자연 절벽을 이용해 그 위로 돌을 쌓고, 경사가 완만한 남쪽은 7분 능선을 따라 성을 둘렀다.

운라산성에서 채집된 대가야계 토기 조각들. /대가야박물관
운라산성에서 채집된 대가야계 토기 조각들. /대가야박물관

운라산성은 위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어지는 곡선 구조를 띠고 있다. 성곽 보존상태가 좋은 곳은 돌 30~40단이 쌓여있다. 높이는 4.3m, 폭은 4.5m다. 운라산성 성벽 대부분은 허물어져 돌무지 띠를 길게 이루고 있지만, 성곽 내부에는 군사들이 말을 타고 훈련하던 주마대(走馬臺)가 남아있다. 봉수대와 우물터가 성안에 있다고 전해지긴 하나, 숲이 우거져 확인하기 어렵다.

대가야시대 산성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가야시대 궁성과 산성을 지켰던 사람들의 무덤이 서로 짝을 이뤄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고령지역 대가야시대 산성 주변에는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다. 운라산성 역시 같은 야산 남동쪽 가파른 주요 능선에 고령 월산리고분군이 있다. 운라산성을 쌓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이 고분군은 운라산성 아래 지점인 해발 50~205m 내외에 고루 분포한다. 대규모 무덤 유적(500여 기)이다. 고분별 지름은 5~20m 내외다.

박천수 경북대 교수(고고인류학과)는 "보통 성벽 파괴가 심한 편인데 운라산성은 비교적 성벽이 잘 남아있다"면서 "발굴조사된 적이 없는데도 이렇게 성벽이 잘 남아있는 곳은 운라산성밖에 없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운라산성 북서쪽으로는 예리산성을 비롯해 성주 방향에서 흘러 내려오는 대가천과 주변 산 지역이 조망되고, 동쪽으로는 의봉산성과 금성천 지류를 비롯해 운수면 일대 넓은 들녘이 한눈에 조망되는 위치"라며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인근 월산리고분군과의 관계로 미루어 보아 대가천을 따라 축성된 성곽들과 연계하여 대가야 궁성의 북서쪽 교통로를 방어하던 산성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운라산성에 세워진 고령군 산불 감시초소. /최석환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1시 30분께 고령 가남마을에서 출발해 30분가량 산을 올라 도착한 운라산성 일부 구간에서는 박 교수 말처럼 성벽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동쪽 내성은 좌우 능선으로 길게 협축 성벽이 구축돼 있었다. 성벽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은 직사각형(장방형) 모양의 깬돌을 이용해 쌓아 올린 모습이 확인됐다.

석축 흔적이 없는 구간도 보였다. 동쪽 내성 주변에는 산불 감시초소가 설치돼 있었다. 산성으로 가는 길에 만난 월산리고분군은 구멍이 뚫려 있거나, 무덤 돌이 바깥으로 노출된 사례가 쉽게 눈에 띄었다. 산성과 마찬가지로 고분군 역시 수풀과 잡목에 뒤덮여 방치 중이었다.

이날 만난 가남마을 일부 주민들은 뒷산에 운라산성과 월산리고분군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동네 토박이라고 밝힌 이점덕(78) 씨는 "지금껏 문화재가 뒷산에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며 "토박이가 동네에 많지 않은데 내가 모른다는 건 다른 사람들도 문화재가 있다는 걸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권한(65) 가남마을 이장은 "10대 때는 산을 넘어 학교를 가곤 했는데 그때부터 산꼭대기에 운라산성이 있다는 걸 봐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산성 존재는 일찍이 알았지만, (같은 산에) 가야 무덤이 있다는 건 몰랐다"면서 "군청에서 추후 문화재 지정에 나선다면 협조하겠다"고 했다.

운라산성에 세워진 고령군 산불 감시초소. /최석환 기자

고령군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관방유적 정밀지표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문화재 지정 절차는 기초조사 이후 학계 전문가 자문을 거친 뒤 검토할 예정이다. 박일찬 고령군청 연구사는 "군은 운라산성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한 차례도 발굴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며 "일단 산성을 대상으로 한 기초조사를 하기 위해 예산을 올려놓은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관리고분군 문화재 지정 먼저 연차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최석환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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