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연극적 요소 결합해 독특한 예술 양식으로 완성
조선 후기 신재효가 다섯 편 골라 편곡하고 다듬어 전승
남도 무당의 무가와 창법 유사해 판소리 기원설로 추론

지난 25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2동 가곡전수관 영송헌에서 제4회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로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조순자 가곡전수관 관장과 유영대 국악방송사 사장이 판소리에 관한 대담과 해설로 강좌를 진행하고 경상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인 소리꾼 오영지가 창을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 26일 가곡전수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고수 남일성을 보며 아니리를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지난 26일 가곡전수관에서 고수 남일성을 보며 아니리를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판소리’란 = ‘판소리’라는 명칭이 어떤 연유로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판’이라는 것이 씨름판, 윷판 하듯이 여럿이 함께 어울려 노는 공간이라는 뜻이고 ‘소리’라는 것이 ‘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민요를 선소리라고 하듯이 ‘노래’라는 의미도 있으니 그러한 판에서 소리를 한다 해서 붙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론일 것이다.

유영대 교수가 전하는 ‘판소리란 무엇인가’를 들어 본다. 그 강의를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꾼이 무대에서 소리와 아니리, 발림으로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고수는 추임새를 넣으며 북 장단으로 반주하는 ‘극 노래’다. 판소리는 남도의 민속 음악에서 탄생했고 조선 후기 여러 명인 명창을 통해 전수되는 동안 음악 형식과 표현력을 갖춘 예술 음악으로 발전했다.

판소리 광대는 장단과 조, 창법, 시김새 등 여러 음악 요소와 아니리, 너름새, 발림 등의 연극적인 요소를 결합해 소리와 연기를 동시에 펼치는 독특한 예술 양식으로 완성했다. 그래서 청중은 소리꾼의 판소리를 듣는 동시에 소리꾼의 연기를 통해 이야기 정황을 상상하며 감상할 수 있다.

판소리 공연은 상황에 따라 주요 장면인 눈대목만 골라 부르기도 하고 긴 이야기 전체를 부르기도 하는데, 전체를 풀어내는 것을 ‘완창’이라고 한다. 작품에 따라 3시간 걸리는 것도 있고 8시간 걸리는 것도 있다.

‘판소리 열두 마당’이란 말이 있듯이 예전엔 판소리 곡목이 다양했다. 참고로 그 열두 작품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박타령)’, ‘토별가(수궁가·토끼타령)’, ‘적벽가(赤壁歌·華容道)’, ‘장끼타령’,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橫負歌)’, ‘무숙이타령(曰者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江陵梅花打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가짜神仙타령)’, ‘옹고집타령(雍固執打令)’ 등이다.

여기서 조선 후기 신재효가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를 편곡하고 정리해 판소리 다섯 마당, 혹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만들어 전승시켰다. 때로는 판소리 여섯 마당이라고도 하는데 이때는 변강쇠타령이 포함된다.

지난 26일 가곡전수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너름새를 섞어 창을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지난 25일 가곡전수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너름새를 섞어 창을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판소리의 전승 = 판소리는 시대마다 명창들의 지역이나 계보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를 갖추어 갔다. 대표적인 것으로 지역에 따라 나눈 ‘동편제’와 ‘서편제’다. 동편제는 구례, 남원, 순창, 곡성, 고창 등에서 성행한 판소리를 이르는 말이고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 즉 광주 보성 나주 고창 등에서 전승한 판소리다.

또 명창 개개인의 음악성을 살려 춘향가나 심청가 전체를 새롭게 짠 것을 ‘~바디’ 혹은 ‘~제’라고 한다. 명창들의 이름을 딴 소리제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계보를 잇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이날 오영지 소리꾼이 부른 판소리가 동초 김연수(1907~1974)의 호를 딴 ‘동초제’다.

명창들이 특정 소리 대목을 창작해 삽입하기도 하는데 이를 ‘더늠’이라고 한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여러 명창이 남긴 더늠으로 권삼득의 흥보가 중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 송흥록의 춘향가 중 옥중가, 염계달의 수궁가 중 토끼가 자라 욕하는 대목 등이 대표적이며 춘향가에 약 70여 곡, 심청가에 40여 곡, 적벽가와 수궁가, 흥보가에 약 50여 곡이 알려져 있다.

판소리는 1964년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됐고 2003년에는 유네스코가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유영대 사장의 설명이다.

◇판소리 근원 = 조선 후기 성행한 판소리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판소리가 남도의 무가(巫歌)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월북한 판소리 연구가 정노식이 <조선창극사>(1940년)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정노식은 판소리의 소리꾼들이 부르는 노래와 음악적 특성, 즉 목소리나 발성법, 음의 구성 등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남도의 무당들이 부르는 노래와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남도 무당들이나 판소리꾼이나 목쉰 소리로 목을 조여서 발성하고 또 모두 ‘미-솔-라-도-레’ 다섯 음으로 부른다는 것도 같고 ‘라’는 평평히 내고 ‘미’는 크게 굴곡을 주어 떨고, ‘도’는 ‘시’까지 꺾어서 내리는 점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발성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근소한 정도여서 역사가 오래된 남도 무당의 무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이 주장이 판소리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밖에 육자배기토리 기원설, 광대놀이 기원설, 판놀음 기원설 등이 있다.

지난 26일 가곡전수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창을 하고 고수 남일성이 북 장단을 맞추고 있다./정현수 기자
지난 26일 가곡전수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창을 하고 고수 남일성이 북 장단을 맞추고 있다./정현수 기자

◇판소리의 생김새 = 판소리 중에 ‘판소리’에 대해 설명하는 판소리가 있다. 신재효가 지은 ‘광대가’라는 것인데, 여기에 판소리 이론과 광대 노릇에 대한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광대가를 들여다보자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첫째 판소리를 즐기는 의미, 둘째 소리꾼이 지켜야 할 4가지 요건, 셋째 소리하는 법, 마지막으로 역대 명창들의 노래 솜씨를 중국 문장가들에 비유한 것이다.

이 중에 두 번째 소리꾼의 네 가지 요건, 즉 법례에 대해 신재효는 그 첫째가 ‘인물치레’라고 했다. 둘째가 판소리 가사를 뜻하는 ‘사설치레’, 셋째가 음악적 입신의 경지에 다다른 ‘득음’, 마지막으로 맵시 있게 소리판을 쥐락펴락하는 ‘너름새’다.

소리꾼의 표현 수단을 보면, 노래하는 ‘창’, 줄거리를 운율화한 말로 엮어가는 ‘아니리’, 간단한 몸동작을 이르는 ‘너름새(발림)’로 나눠볼 수 있겠다. 소리판에서 분위기 고조를 위해 또 중요한 표현 수단이 있다. 바로 ‘추임새’다. 추임새는 북 장단을 치는 고수도 할 수 있고 청중이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판소리의 장단은 일반적으로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휘모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6일 가곡전수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너름새를 섞어 창을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지난 26일 가곡전수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인문학강좌 '조선의 뮤지컬 판소리'에 출연한 소리꾼 오영지가 너름새를 섞어 창을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판소리의 미래 = “범 내려온다” 이날치밴드의 이 노래 하나로 판소리는 전 국민이, 더 넘어서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한번 쯤 들어본 노래가 되었다. ‘범 내려온다’는 수궁가로 알려진 토별가에 나오는 ‘창’이다. 여담으로, 이날치는 19세기 세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난 판소리 명창이다.

국악을 현대음악에 접목해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들이 많다. ‘악단광칠’, ‘씽씽밴드’ 그리고 소리꾼 이희문도 독특한 음색의 노래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희문 오방신과’ 공연이 9월 도내에서 몇 차례 계획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며 음악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판소리는 이제 고리타분할 것만 같았던 옛노래가 아니다. 그래서 판소리의 미래는 충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겠다.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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