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넘치는 공공연한 적의 속 선거
후보 고르는 재미 즐기는 축제여야

철도기관사 근무 중 새벽에 일을 마치면 마산역 번개시장에서 콩국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는 버릇이 들었다. 입맛도 없는 아침에 3000원이면 구수한 콩국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으니 이만한 맛집도 드물다. 예나 지금이나 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콩국리어카는 나의 철도 인생과 더불어 30년 단골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에도 콩국 먹으러 가는데 시장 주변이 유난히 소란스럽다. 주말엔 제법 북적거리는 역전 번개시장인지라 이번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선거 로고송이 좌우에서 울려퍼지고, 경쟁적으로 인사를 하는 선거운동원들과 장보러나온 시민들까지 한꺼번에 몰려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다. 그 와중에 콩국리어카는 60대 아저씨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내한테 파란 옷 입은 놈이 잘 부탁한다꼬 명함을 줄라카는기라. 그래가 내가 '저리 안치우나!'카고 감을 질렀디마는 놀래가 간다아이가∼." 누가 듣거나 말거나 마치 전공을 자랑하듯 떠들어댄다. 하긴, 경상도 살면서 이런 분 한두 번 만나는 게 아니다. 동네 앞산 운동시설이 있는 곳에 모인 영감님들 중 상당수도 이런 분위기셨다. 일전에 선거를 앞두고 몇 분이 하도 담지 못할 욕을 하길래 누구신가 살펴보니 한 분은 교장 선생님을 퇴직하신 교육자이시고 다른 분은 경찰 간부를 하던 점잖은 분이셔서 더욱 놀랐던 적이 있다. 그분들에게 경상도에서 ○○당은 '우리 편'이고 상대 당은 무찔러야 할 '적'이었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고 말고가 놀라운 게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여과없이 드러냄을 넘어서서 불특정 다수에게 거칠게 과시하고 강변하는 태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나와 입장이 다름을 인정할 수 없는 살기등등한 적의는 결국 본인의 의식이 전체주의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디 이 영감님만 쳐다보며 혀를 찰 일인가. 우리는 이미 이런 노골적인 적의에 익숙하다. 지난 대선도 우리 사회는 차고넘치는 공공연한 적의 속에서 치러냈다. 한 후보 부인의 10여만 원 법인카드 사용 의혹을 집요히 파헤치던 언론들은 100억이 넘는 상대 후보 특활비 의혹에는 입을 닫았다. 대장동 의혹에는 분기탱천한 기세로 기사를 쏟아내던 기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의혹과 장모 의혹 앞에서는 펜이 무뎌지기 일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동훈 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대필 의혹에 관대하기 이를 데 없는 작금의 언론을 보노라면 조국 사태 때 표창장 의혹에 대해 총궐기하던 언론의 태도는 단지 적의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나와 '다른' 입장을 '틀린' 입장으로 여기고 공격하는 행위는 적의의 표현이다. 급기야 이젠 인천 계양 을 보궐선거에 나서 선거운동 중이던 이재명 후보자에게 철제그릇을 던지는 시민까지 등장했다. 나는 이 몰지각한 시민과 콩국을 먹던 아저씨, 그리고 특정 입장에 기대어 기사를 쏟아내던 기자들이 다름을 알지 못한다.

선거는 축제여야 한다. 비록 나중에 개돼지 취급을 받더라도 어쨌든 선거철만이라도 국민이 주인 대접을 받는데 이게 어딘가? 축제가 열려서 좋은 점은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것 아닌가? 선거가 축제가 되려면 마찬가지로 후보를 고르는 재미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꾸 선거가 전쟁이 되어간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예전에는 콩국 가게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제법 있었을 터이나 지금은 어느 누구도 동조하지 않고 혀를 끌끌 차는 분위기더라는 것, 그 손님 나가고 나니 한 아주머니가 내뱉은 말이 정답이다. "지가 싫으마 안찍으모 되지. 만다꼬 저래싸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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