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마천산단 이전 (1) 벼랑 끝에 선 기업들

산업단지 하나가 수렁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음지에서 묵묵히 창원산단의 영광을 뒷받침해왔던 진해 마천일반산업단지, 그중에서도 뿌리산업에 속하는 주물기업들 이야기다. 이들은 살길을 찾고자 오래전 새 보금자리를 향한 항해를 시작했지만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사이, 배는 서서히 잠기는 중이다. 일반 도민은 물론, 정치와 행정에도 잘 닿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길어올리는 이유다. <경남도민일보>는 마천산단 주물기업들이 겪은 대내외적 위기와 20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밀양 하남산단 이전 진행 과정, 이전 이후의 대안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 6일 오전 10시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하남일반산업단지를 찾았다. 창원시 마천일반산업단지(이하 마천산단) 주물기업들이 이전을 예정한 곳이다. 한 바퀴 돌아보니, 말끔히 닦인 왕복 4차로 도로가 부지 사이사이를 가로질렀다. 전봇대 사이 전선이 이어졌고, 그 밑에 가로수를 심었다.

하지만, 그 너머 산단 부지 위에는 자갈과 잡초만 가득했다. 넓고 황량한 땅에는 공장 두 곳만 덩그러니 들어섰다. 2019년 부지조성이 끝났는데도 이전 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을 추진 중인 주물기업 사정과 산업 특성, 현실에 맞지 않는 각종 규제 등이 맞물렸다.

◇쫓겨온 사람들, 창원산단 떠받쳐 = 마천산단은 부산 사상공단 주물기업들을 중심으로 조성된 곳이다. 공해문제로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자 일부 기업이 조합을 결성해 1994년 당시 진해시 남양동으로 이전·정착했다.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없는 고립된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창원 진해 마천산단 주물기업
장비 노후화로 생산력 감소하자
2005년 밀양 하남산단 이전 추진

쫓기듯 떠나온 신세지만, 이들은 창원국가산단과 경남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주물은 대표적인 뿌리산업으로, 비철·고철 등 원료로 공작기계·농기계·건설중장비, 자동차·선박 등 각종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납품한다. 용해로에서 나온 쇳물은 뭐든 만들어냈다.

이정복 마천산단공단협의회장은 "창원국가산단에 있는 그 많은 기계 공장 중 주물기업들이 만드는 소재부품 없이 돌아가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주물기업들이 문을 닫으면, 그 여파는 이곳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3일 마천산단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이처럼 가슴 한편에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어도, 자신들이 만든 부품들이 창원산단을 넘어 한국 제조업 신화를 떠받쳤다는 당당함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과거처럼 녹록지 않다. 2000년대 초반부터 느꼈던 위기감이지만, 애써 마련한 이전계획은 지지부진하다.

◇시설 노후화·공해·이중규제 못버텨 = 마천산단 주물기업들은 2005년부터 밀양하남기계소재공단사업협동조합을 설립해 밀양 이전을 추진해왔다. 겨우 정착한 공간이지만, 갈수록 여러 문제점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장비 노후화로 말미암은 생산력 저하가 심각했다.

권영중 마천산단 환경비상대책위원장은 "주물은 10년 주기로 기술 수준이 급격히 달라지는데, 현재 마천산단에서 가장 오래된 설비가 25~28년쯤 됐다"라며 "산단 매출은 80%가 수출, 대기업 납품이 40%인데 생산성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면 둘 다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설비를 개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장치산업 특성상 장비가 거대한데다 일체형이라서 뜯어내면 곧바로 고철이 되어버린다. 새 설비를 들여올 공간도 없다. 47만 9400여 ㎡ 안에 58개 업체가 조밀하게 차 있어서다. 두동단지 내 아파트들을 비롯해 인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부지 확장도 어려워졌다.

사상공단에서 겪었던 주민들과의 갈등도 재연됐다. 개별 공장은 법적인 환경 기준을 충족했어도, 한꺼번에 모이다 보니 악취·비산 먼지 등에 피해를 본 인근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2008년 주민들이 공해추방대책위원회를 만든 이후, 산단 기업들도 환경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하남일반산업단지 드넓은 부지가 텅 비어 있다. /이창우 기자
▲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하남일반산업단지 드넓은 부지가 텅 비어 있다. /이창우 기자

이 협의회장은 "매년 독자적인 환경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고, 산단 내에 폐쇄회로(CC) 카메라를 설치해 구청·경자청과 모니터를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자리에 함께한 배종량 웅동1동자치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설 노후화에 따른 근본적인 제약은 어쩔 수 없다"라며 "결국 주물기업들이 밀양으로 가고, 남은 공간에 경쟁력 있는 업종이 들어오는 일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주민 반대에 오염 방지 등 약속
2019년 어렵게 부지 조성했지만...

◇살길 찾았지만 못 떠나는 사정 = 공장 이전이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자신있었다. 경기가 좋아 주·야간으로 공장을 돌리던 시기였다. 그만큼 금융기관 자금 융통 여력도 있었다. 처음에는 2015년께 이전을 끝낼 계획이었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는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하남산단 인근 주민들이 주물기업 입주 반대운동에 나선 것이다. 기업들은 친환경 공장 조성 등 오염방지책 마련, 토지보상, 주민 고용보장 등 약속을 한 뒤 2019년에야 부지 조성을 마칠 수 있었다.

▲ 지난 3일 창원 마천일반산업단지관리공단 사무실에서 만난 (왼쪽부터)권영중 산단 환경비상대책위원장, 배종량 웅동1동주민자치위원장, 이정복 마천산단공단협의회장. /이창우 기자
▲ 지난 3일 창원 마천일반산업단지관리공단 사무실에서 만난 (왼쪽부터)권영중 산단 환경비상대책위원장, 배종량 웅동1동주민자치위원장, 이정복 마천산단공단협의회장. /이창우 기자

그사이 대내외적인 상황이 급변했다. 2016년 조선업 구조조정,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말미암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가 이어졌다.

권 환경비대위원장은 "적자가 누적되면서 공장을 이전할 여유 자체가 없어졌고, 주물 설비, 공장 부지를 매각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설비는 뜯자마자 고철 값밖에 못받는 데다 이중규제를 받는 마천산단 부지는 전혀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래서다.

 

조선업 위기·코로나19·전쟁 등
대내외 악재에 분양권 반납도

마천산단에서 건물 인허가나 대기·악취 기준은 경자청, 토지 인허가·수질 기준은 창원시 소관이다. 2003년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설립과 함께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이후부터다. 앞으로 입주할 기업 처지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다.

허용 업종도 제한적이다. 마천산단은 밀양 이전을 전제로 2008년께 주물산업단지에서 일반산업단지로 바뀌었고, 상속을 제외하면 신규 주물기업이 들어올 수 없다. 문제는, 다른 업종이 들어오기에는 산단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진해신항 배후 입지를 생각하면 물류기업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지만, 권 환경비대위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물류업체는 최소 5000평은 되어야 들어올 생각을 하는데, 개별 기업들은 2000~3000평이 고작이니 누가 사가겠나"라고 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거금을 들여 투자한 부지는 활용도 못 한 채, 융통 자금 이자만 빠져나갔다. 조합 결성 당시 이전에 참여하겠다고 한 42개 기업 중 16곳은 분양권을 반납했다. 남아 있는 기업들도 간신히 버티고 있다.

사업 동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계기가 하나 생겼다. 바로 문재인 정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다. /이창우 기자 irondumy@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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