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성매매 관련 뉴스 댓글
매춘 합법화 외치며 반대 비판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 가득 차
제한된 시각 속 자신 과대평가

사람들이 특정영역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지편향을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성범죄, 특히 성매매 관련 뉴스 댓글 창에서 종종 비장한 장문의 글을 목격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거는 인터넷에서 출처 없이 떠도는 낭설들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 논리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춘의 합법화를 옹호하며, 덤으로 성매매를 반대하는 이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 비난한다. 말은 조금씩 달라도 비슷한 이런 글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과 무지몽매한 이들에게 한 수 가르치겠다는 자세다. 기본적인 맞춤법도, 논지 전개도 제대로 된 구석이 없는 글에 담긴 진지함과 비장함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단순히 무식해서 그런 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차별과 편견 정당화하는 진화심리학

유학 시절 알게 된 이××은 이제껏 살면서 본 사람들 중 가장 압도적인 스펙을 자랑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자타공인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굴지의 회사를 다니던 중이었다. 이공 계열을 전공했던 그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방면의 지식을 자랑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참 좋아했다.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그에 대한 환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심리학의 대표적인 낭설 중 하나인 '남녀의 다른 뇌 구조 이론'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파하는 것을 보면서부터다. 해당 이론은 국내에서 2000년대 초반 진화심리학을 다룬 대중서를 통해 반짝 인기를 얻게 된 이론이다. 하지만 이후 그 기반이 되는 진화심리학은 남성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동시에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하고 더 나아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성차별과 편견을 정당화하는 주범으로 찍힌 지 오래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 남녀의 뇌구조에는 차이가 없으며, 인간의 뇌는 어느 한 쪽 성별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의 대학을 나온 사람이 철 지난 엉터리 이론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부르짖던 모습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더닝-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t)

심리학에서는 두 사례의 주인공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 있다.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는 특정 영역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지 편향이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1999년 코넬 대학교의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의 실험 논문을 통해 알려졌다. 두 사람은 실험 참가자들의 논리, 문법, 유머감각을 시험했는데, 하위 25%에 해당되는 이들이 대체로 자신의 실력이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자체 평가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더닝-크루거 효과를 증명한 다른 실험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정치, 생물학, 물리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련된 용어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각 분야에 해당되는 주제와 함께 일부러 꾸며낸 용어들을 포함했다. 실험 결과, 약 90%의 참가자들이 꾸며낸 용어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답했다. 주제에 친숙하다고 느낄수록 무의미한 용어에도 익숙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 사람들이 특정영역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지편향을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 사람들이 특정영역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지편향을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유능하다는 착각에 빠질까?

더닝-크루거 효과가 발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인지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발견·통제하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즉, 생각에 대한 생각, 인식에 대한 인식처럼 고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이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행동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기 객관화 능력과도 연관이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매우 제한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한다. 제한된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보면 매우 숙련되고, 지식이 풍부하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덜 숙련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두 번째, 과신이 부르는 사회적 이득 때문이다. 과신은 매우 유능하고 설득력 있어 보이게 한다.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체면을 잃는 위험을 무릅쓰기보다 유능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많은 사회적 기회와 이득을 가져다준다. 지위와 권력에 대한 열망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능력이 있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로 귀결된다. 실제로 사회심리학 연구에서는 과신이 사회적 지위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자리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작은 지식이 불러오는 과신력 때문이다. 어쭙잖은 지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잘못 믿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지했던 분야에서 소량의 지식을 얻으면 갑자기 전문가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깊게 공부할수록 해당 분야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얼마만큼의 숙련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은 가장 좋은 예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학벌을 가리지 않는다.

더닝-크루거 효과의 영향에 취약한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우리 모두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졌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무지하고 무능한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누구도 매사에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인 토머스 소웰은 명문대 출신들에게서도 더닝-크루거 효과가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하버드와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소에서 근무한 그는 십수 년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생을 경험한 학자다.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통해 명문대 출신들이 보이는 더닝-크루거 효과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제시했다. 소웰에 따르면 명문대 출신들은 종종 부정확한 주장을 하며 자신이 공부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자신이 공부하지 않은 분야로 쉽게 확장한다고 한다. 그들은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류기관의 교육은 그들의 좁은 전문 지식을 광범위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학위 그 자체가 무지한 영역에 힘을 실어주고 사회적 지위를 뒷받침 해주는 일은 한국에서 더 빈번하다. 아니 일상화돼있다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언론은 고압적인 자세로 여러 분야를 다 아는 듯 떠드는 명문대 출신 어느 정치인의 발언을 주목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발언이 어떤 함의를 갖고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지, 다가올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지적하는 곳은 극소수다. 분명한 것은 교육 수준을 막론하고 개인이 갖는 지식과 경험은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높은 사회적 위치에 이른 삶은, 부모로부터 빚을 물려받고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조건에서 일찍이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신체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이의 삶을 결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대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수준과 동일화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일정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지식이 확장될수록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앎은 거대한 세상 속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더닝-크루거 효과를 피하는 방법

가장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학습과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지식 기반을 맹목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늘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관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해당 분야에 숙련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다. 또한 건설적인 비판에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충동에 저항해야 한다.

더닝-크루거 효과를 가진 사람을 가장 쉽게 알아차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매사 자신감이 지나치며 오만하고, 거기다 싸가지까지 없으면 그는 더닝-크루거 효과에 잠식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