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박물관 의령 건립 기원
고루 이극로 박사 배움길 걷기
1구간 듬실마을∼함안 대산면
여러 일화 듣고 봄 정취도 만끽

"이극로 선생이요? 전에는 잘 몰랐어요. 걷기대회 한다고 해서 참석했는데 출발하기 전 오태완 의령군수 소개말을 듣고 그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어사전을 만든 분인 줄 알았어요. 당연히 의령에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태야지요."

이극로 선생의 생가로 향하던 길에서 만난 박서원(56·의령군 의령읍)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일 국립국어사전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의령에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세우자는 염원을 담은 '고루 이극로 박사 배움길 걷기대회'를 열었다. 의령군민을 비롯해 도내 각지에서 온 도민 120여 명이 행사에 참여했다.

추진위는 출발에 앞서 오전 9시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 듬실마을 이극로 생가 인근에 있는 기강문화센터 마당에서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의령 건립 결의식을 진행했다.

▲ 2일 열린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 기원 '고루 이극로 박사 배움길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1구간 길을 걷고 있다. /정현수 기자
▲ 2일 열린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 기원 '고루 이극로 박사 배움길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1구간 길을 걷고 있다. /정현수 기자

김복근 추진위 공동대표가 건립 취지문을 낭독했다. 추진위는 건립취지문에서 말갈, 흉노, 여진, 거란, 만주족 등 사례를 들어 나랏말이 없어지면 민족도 사라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조선어 과목이 폐지된 사실, 조선어학회가 독립단체로 규정돼 해산 당한 사건, 광복 이후 남북 공동의 <겨레말큰사전> 편찬 운동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과 사이버 언어의 난무로 우리말이 오염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추진위는 "국어의 위상이 흔들리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국어 수난의 역사와 국어 보전' '국어연구' '토박이말의 전승'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의령에 지어야 한다"고 건립 당위성을 강조했다.

오태완 의령군수도 "의령에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며 "전체 군민이 하나가 되면 안 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극로 선생이 조선어사전을 만든 주역임에도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은 월북해 부수상까지 지낸 이력 때문"이라면서 "북한이 철저하게 우리말을 지키는 이유는 이극로 선생의 사전 발간 업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참가자들이 미리 준비된 점심을 받고  있다. 이날 점심은 장애인시설인 '지정면 사랑의 집'에서 제공했다. /정현수 기자
▲ 참가자들이 미리 준비된 점심을 받고 있다. 이날 점심은 장애인시설인 '지정면 사랑의 집'에서 제공했다. /정현수 기자

이날 시작된 이극로 배움길 걷기는 총 3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1구간은 이극로 생가에서 출발해 함안군 대산면행정복지센터까지, 2구간은 오는 9일 첫날 도착지인 대산면행정복지센터에서 칠원읍 유원초등학교까지 11.9㎞, 3구간은 다시 이곳에서 창원시 마산회원구 옛 창신학교가 있던 회원동 한효아파트까지 11.9㎞ 거리다.

김 공동대표가 이극로 배움길 지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극로 선생이 17세 되던 해 4월 어느 날 듬실마을에 있는 집에서 마산 창신학교까지 종일 걸어서 갔는데 예전과 지금의 길이 많이 다르기에 그 경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그래서 지름길을 택하되 걷기 좋고 풍광이 아름다운 길을 여러 번 답사하면서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첫날 참가자들은 이극로 생가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본격적으로 1구간을 걸었다. 5분 정도 걷다 보면 두곡휴게소를 만나는데 이곳에서부터는 두곡천 둑길이 시작된다. 둑길을 벗어나면 남강변 보덕로를 만난다. 남강 풍광을 감상하며 도로를 한동안 걸었다. 강 건너편 함안군 대산면에 가로수로 줄지어 있는 벚꽃이 화사하게 다가온다.

▲ 참가자들이 이극로 선생 일화를 듣고 있다. /정현수 기자
▲ 참가자들이 이극로 선생 일화를 듣고 있다. /정현수 기자

강변도로 길이 끝날 쯤에 지정면 보덕로를 따라 걷다가 창의로2길로 접어드는 갈림길 인근에 있는 솔숲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점심은 이곳 장애인시설인 '지정면 사랑의 집'에서 제공했다. 이날 참가자들에게 모자도 지급되었는데, 이는 신정정밀 강신부 대표가 지원했다. 솔숲에서 김 공동대표가 이극로 선생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창신학교에 입학한 뒤 어느 날 호주 선교사와 낙동강에 소풍을 간 적이 있는데, 이때 선교사가 '조선이 나라를 빼앗긴 것은 청년들이 기백이 없어 그렇다. 기백이 있다면 저 강물에 뛰어들어봐라'고 말했고, 그러자 고루 선생이 바로 옷을 입은 채 뛰어들었는데, 그때 생긴 별명이 물불이었다고 합니다. 물불 안 가린다 해서 생긴 별명이죠."

다시 출발한 일행은 높이 88.5m의 소코등산 산길을 따라 걷다가 지어진 지 110년이 넘은 의령마산교회 앞을 지나 옛 송도교를 건넜다. 의령군을 지나 함안군 대산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 송도교는 의령 지정면과 함안 대산사람들에게 '선거다리'라고 불린단다. 동행하던 이달균 경남문협 회장의 설명이다. "선거철만 되면 놓아준다는 약속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6.25전쟁경찰승전탑에서는 산길을 따라 오르며 고개를 넘어 우리말 지명으로 짝새골로 불리는 구혜마을로 내려오면서 한동안 마을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벚꽃이 활짝 핀 가로수길을 잠깐 걷고 큰길 대산중앙로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인도를 15분 정도 걸어 대산면사무소에 도착하면서 1구간 걷기는 끝났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기념촬영을 하면서 다시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의령 건립을 결의하고 버스로 출발지로 돌아와 해산했다. 쉬는 시간 포함해 총 4시간 15분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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