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대결 편승해 지정학 포로 돼선 안돼
새 정부, 당사국간 신뢰 선순환 도모해야

봄은 왔으나 한반도는 차가운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북한은 한국 대선 결과가 발표된 3월 10일 김정은 위원장의 국가우주개발국 현지지도에 대해 보도하면서 김정은이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사업은…우리 당과 정부가 가장 최중대사로 내세우는 정치군사적 선결과업, 지상의 혁명과업"이라고 발언한 사실을 공개했다. 다가오는 4월 15일 김일성의 110회 생일까지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거나 아직 비행시험을 하지 않은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결국 북한은 3월 24일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동해상으로 신형 ICBM '화성포-17형'을 고각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핵실험 재개 조짐도 보인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 새 건물이 들어서거나 기존 시설을 수리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어 올해 하반기 제7차 핵실험을 강행할 조짐도 보인다. 바야흐로 한반도 정세는 군사적 위협과 적대 언어가 난무해 국민을 걱정케 했던 2017년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해지고 세계질서 불안정성이 높아진 지금은 2017년 이전과는 다른 위기 국면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남북관계 불신이 높아지고, 군비경쟁이 가속화되었다. 냉전시대의 지정학도 회귀하고 있다.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 진영 간 '지정학적 단층지대'의 동쪽에는 한반도가, 서쪽에는 우크라이나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먼 나라 문제라고 장담할 수만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격화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까. 세계질서가 변화하는 정세일수록 실용적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간 경쟁구도에서 한반도 평화·안정이라는 국익 차원의 미·중 협력 공간을 분리해 내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위기 국면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협상공간을 만들어 한국의 북·미 간 중재자적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 북·미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공개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비사'는 시사점을 준다. 정 장관에 의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을 '미국 사찰단과 함께 남측에서도 함께 와서 폐기하자, 약속이 잘 이행되면 그 이상의 조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당사국 사이 신뢰 형성과 '신뢰의 선순환'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새겨야 하는 대목이다.

새로운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진영 간 대결논리에 편승해 우리나라가 '지정학의 포로'가 되지 않길 바란다.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위기는 국민이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강대국 대결 정치의 공간을 확장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 노태우 정부의 실사구시적 대북정책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세계 탈냉전 시기 '여소야대' 여건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공산주의를 잘 이해하고 있는 합리적인 중도 성향의 이홍구 교수를 국토통일원 장관에 임명하면서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의견을 듣고 여·야·정 합의에 의해 통일방안을 마련하도록 위임했다. 결국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립하고,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지속한 결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세계질서 전환기에 노태우 정부의 실사구시 대북정책은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을 발전시켰고, 한반도 정세의 평화적 관리에 기여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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