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평등·돌봄노동·인종차별 등
코로나19로 직면한 전 세계적 쟁점
다양한 분야 연구자 8인, 다층 분석

'안티 페미니스트 대통령 탄생', '백래시 활용한 대통령직 차지'. 지난 9일 주요 외신에 등장한 한국 대선 결과 뉴스 제목이다. 인수위원회 구성도 5060·남성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칠레 유권자는 다양성과 여성주의를 강조한 대통령을 선택했다.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인 가브리엘 보리치는 35세이다. 그가 지명한 장관 후보자 24명 중 14명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30대도 7명에 달한다.

배제와 차별의 언어로 잠식된 대선 과정을 돌아보면서 <팬데믹 이후의 시민권을 상상하다>를 집어들었다. 정치철학·여성학·사회학·종교학·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이 오늘날 시민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다층적으로 재조명한 책이다.

"코로나19는 국적·인종·지위·지역·성별·섹슈얼리티·나이·장애·종교 등에 상관없이 전이될 수 있다. 하지만 평등하게 감염되더라도 의료 혜택, 보건 위생, 주거와 노동환경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은 결코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글로벌 양극화가 초래한 적나라한 불평등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67쪽)

한상원을 비롯한 8인의 저자는 팬데믹 이후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불평등, 가부장적 한국 사회와 돌봄 노동, 인종차별과 혐오, 피난민과 이주자 권리 등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직시한다.

임옥희는 팬데믹 상황에서 돌봄노동이 폄하되고 있는 문제에 밀착해 페미니즘 해방 기획과 시민과 사이의 관계를 고찰한다. 시민의 범주에서 배제와 포함의 경계를 허물어 내는 것을 통해 시민적 참여의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진범은 한나 아렌트의 '기적' 개념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모색한다. 비상사태 시대에 주목할 지점은 주권자의 결단이 아니라 노동·작업 등 여러 활동과 세계를 사랑하고 돌보는 방향으로 이끄는 시민적 정서를 역설한다.

▲ <팬데믹 이후의 시민권을 상상하다>는 팬데믹 이후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불평등, 가부장적 한국 사회와 돌봄 노동 등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사진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자 창원시 마산체육관 앞 선별검사소에 길게 줄을 선 시민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팬데믹 이후의 시민권을 상상하다>는 팬데믹 이후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불평등, 가부장적 한국 사회와 돌봄 노동 등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사진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자 창원시 마산체육관 앞 선별검사소에 길게 줄을 선 시민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김민아는 팬데믹 상황이 사회적 약자 이를테면 배달 노동자와 성소수자, 코로나 상담 노동자들을 가시화한 점에 주목하며 종교의 사회운동 담론이 우리 사회의 균질하고 매끈한 삶의 경계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초점을 맞춘다.

황병주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 집단 주체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민'을 조선 시대 이래의 용례와 서양에서 유입된 근대 용례가 뒤섞여 엉클어진 역사적 용어로 규정한다. 이 연구에서 눈길을 끄는 지점은 한국에서 시민 개념이 사용된 독특한 사례로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의 '시민군'을 들고 있다.

신나미는 미국 문학의 이민 서사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아 20세기 후반 이주의 경험이 새롭게 서사화된 양상을 살펴본다. 그가 분석한 이민 서사의 새로운 방식은 이주자의 이야기를 체류권으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기까지 과정으로 국한해 상상하는 관습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끝이 보이는 듯하면서도 불투명한 현실이 지속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는 불확실하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권리들 자체에 대해, 그 권리가 누군가의 희생 또는 불평등한 구조 위에 탄생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360쪽. 후마니타스.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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