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 약하다 생각하겠지만
나름 잘 싸운 것 보여주고파"
김명훈 학예연구사 기획 설명

"조선도 나름대로 화약무기를 개발하면서 잘 싸웠던 군대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난 23일 오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난 김명훈 학예연구사가 조선무기 특별전 '화력조선'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그의 해설 첫마디를 듣자마자 특별전에 화력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를 절감했다. 조선군 하면 후줄근한 포졸복을 입고, 활 쏘고, 삼지창(당파)을 들고 싸우던 약한 군대가 떠오르는 게 보통인데 화약을 앞세워 나라를 지키고자 애썼던 조선을 주목해온 점이 그의 설명 속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 김명훈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총통 앞에 서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김명훈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총통 앞에 서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김 학예사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선 후 입구 주변을 살폈더니 '화약'이라고 적힌 벽면 문구가 눈에 띄었다. '화약은 오병(창·칼·도끼·활·방패를 이르는 말)을 보조하는 (중략) 국위를 크게 선양하고 포악하고 난을 일으키는 자들을 제거하니, 태평성대를 여는 데 큰 벼리가 되는 물건이다.'

벽면 옆쪽으로는 화약을 약으로 기록한 <본초강목> 등이 전시돼 있었다. 특별전 들머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걸어가던 김 학예사가 약학서 앞에 다가서서 차분한 어조로 화약의 옛 쓰임새 이야기를 풀었다.

"화약(火藥)의 약은 '약 약'자예요. 본초강목 같은 약학서에는 화약이 그냥 약으로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장티푸스 같은 열병 있잖아요. 이런 걸 치료하거나 또 벌레를 쫓거나 하는 약재로 소개가 돼 있어요. 여러 물건을 섞었는데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다든지 그런 모습에 신비함을 느껴서 신선이 되기 위한 약재로 썼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처음엔 약이었는데 폭발 위력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무기화를 시작하게 된 거죠."

그의 말처럼 초기 화약은 질병 치료에 쓰이는 약재였다. 단약 재료에서 열병을 고치는 약으로 쓰이다가 훗날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로 이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화약이 무기화된 것은 9~10세기 무렵 중국 송나라 때부터다. 화약은 염초(질산칼륨·KNO16)와 숯·유황을 혼합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조선에선 1377년께부터 무기화됐다. 화약 무기 제조 역사는 최무선(1325~1395)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16종에 이르는 화약 무기를 만들었다.

화약 무기 종류·발전상 정리
휴대용 화포 승자총통 등 소개
무기 제작 힘쓴 장인들 조명

조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화약 무기 발전을 꾀했는지는 그다음 공간으로 넘어가면 잘 나타난다. 고려 말 화약과 화약 무기의 태동과 선진적인 무기 체계 발전상,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의 개편 역사, 휴대용 소형화포 승자총통(보물 제648호) 등을 조명하는 공간이다.

▲ 국립진주박물관 화력조선 전시유물인 고총통.    /국립진주박물관
▲ 국립진주박물관 화력조선 전시유물인 고총통. /국립진주박물관

"여기서는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총통인 고총통이 전시 중인데요. 이건 사실 우리나라 전통 총통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명나라로부터 수입 배급받아 제작된 거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태조 때까지만 해도 정국이 시끄럽고 어지러워서 화약 무기는 관심 밖이었어요. 그러다 태종 이후에 국정이 안정되면서 화약 무기 발전이 지속해서 이뤄지게 되죠. 총통 대부분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는데 고총통과 삼총통·승자총통 등 청동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총통이 이 공간에 있어요."

김 학예사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화약 무기의 숨은 이야기도 전시장에 꾸렸다. 막금과 준금 등 이름은 낯설지만 화력조선을 만들기 위해 피땀 흘린 장인들을 조명하는 것이다.

실제 장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총통이 전시 끝에 나와 있다. 조선시대 총통에는 손잡이 표면에 글자가 새겨진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나온 것도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특별전에 나온 총통에는 제작자 이름 말고도 제작 연월, 사용된 재료, 제원, 발사체의 숫자나 화약 소모량 등이 한자로 쓰여있다.

▲ 조선시대 장인들이 만든 총통. 총통에는 제작자 이름을 포함해 제작 연월, 사용된 재료, 제원, 발사체의 숫자나 화약 소모량 등도 상세하게 한자로 쓰여있다.   /최석환 기자
▲ 조선시대 장인들이 만든 총통. 총통에는 제작자 이름을 포함해 제작 연월, 사용된 재료, 제원, 발사체의 숫자나 화약 소모량 등도 상세하게 한자로 쓰여있다. /최석환 기자

"누가, 언제 만든 총통인지, 무게는 몇 그램이고, 탄약이 얼마나 쓰이는지, 손잡이 부분에 빼곡하게 쓰여있어요. 당시에는 책임 소재 문제 탓에 표기하게 된 거였는데요. 총통을 만든 다음 그램 수를 적었는데 표기된 것보다 더 가벼우면 빼돌렸다는 얘기가 되니까 이런 사례를 적발해 처벌한다든지 그런 의미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의미가 있는 게 장인들의 이름인데요. 다른 건 몰라도 총통에 적힌 장인들의 이름은 꼭 보고 가시면 좋겠어요. 총통 제작 전문가들인데 왕조실록에 장인들의 이름이 남은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예전에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열심히 잘 만들었다는 걸 꼭 알고 가면 좋겠고, 이 전시로 조선군과 국가 자체 이미지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국립진주박물관은 2020년부터 공식 유튜브 계정에 '화력조선'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다. 활의 나라로부터 화약 무기의 나라로 거듭난 조선과 총통 이야기를 엮은 영상을 볼 수 있다. 관람료 무료. 3월 6일까지. 055-740-0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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