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강금순 할머니 등 28명
거창 성인문해교육 이수 졸업평
균나이 69세 배움 열정 귀감

"오늘은 처음으로 일기를 씁니다. 이름 석 자 쓰는 게 소원이었는데…. 내가 일기라는 걸 쓸 줄이야. 배우는 즐거움이 이렇게 행복한 걸 왜 진작 몰랐을까?"

2021년 4월 12일 유학임(73) 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기를 썼다. 계속 일기를 쓰면서 삐뚤빼뚤하던 글씨도 점차 반듯해졌다. 지난해 10월 12일 쓴 일기에는 "학생이 되고 이름을 쓰고 글자를 알아가는 기쁨은 내가 선택한 것 중 제일 멋진 선택이다. 내 마음에 꿈을 심고 싶다"고 적었다.

유 할머니와 함께 지난 3년간 성인문해 교육에 참여한 28명은 지난 11일 초등·중등 졸업장과 학력인정서를 받았다. 지난날 배움 기회를 놓쳐 늘 마음 한 쪽에 남아 있던 설움을 떨쳐냈다.

이날 오전 거창군청 대회의실에서 '2022년 성인문해 학력 인정 졸업식'이 열렸다. 구인모 거창군수가 졸업장을,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학력인정서를 전달했다.

주인공은 중학 과정(13명) 강금순·강복순·강영순·권점임·김점옥·이귀남·정명자·정하순·조해순·최경자·황기순·황순늠·이혜연, 초등 과정(15명) 이금자·구삼생·신숙자·하춘자·정타순·이희순·김분달·신군자·황외박·유학임·이금순·유채민·이순자·이사순·석현진 씨 등이다.

평균 나이 69세인 이들은 초등·중학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자존감을 키웠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서 수업 시간에 셈을 못해 답을 틀려도 그저 좋았다. 버스 번호와 노선을 읽어 탈 줄 알게 됐고, 은행에 가도 당당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에게 학문의 길을 열어줘, 은행에 갈 수 있게 해줘, 더하기·빼기·나누기를 할 수 있게 해줘, 우주와 식물을 알게 해주고, 자존감을 키워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정하순(61) 씨가 학생 대표로 적어 온 소감문을 또박또박 읽었다. 정 씨는 소감문을 다 읽고 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졸업식장에 있는 모두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담임을 맡았던 오상근(70) 교사는 "학생들이 평생 자기 이름 없이 살아온 분들이라 모두 이름을 부르며 수업을 했다. 배우지 못한 한이 있었는데, 3년간 굉장히 행복하고 즐겁게 수업했다"고 말했다.

▲ 지난 11일 거창군청에서 열린 '2022년 성인문해 학력 인정 졸업식'에서 최고령 졸업생인 강금순 할머니가 박종훈 교육감에게 학력인정서를 받고 있다.  /김희곤 기자<br /><br />
▲11일 거창군청에서 열린 '2022년 성인문해 학력 인정 졸업식'에서 최고령 졸업생인 강금순 할머니가 교육감에게 학력인정서를 받고 있다. /김희곤 기자

강금순(84) 씨는 졸업생 중 최고령자다. 강 씨는 "어려운 시절 태어나 세상을 많이 원망했었다. 오래 살고 보니 오늘처럼 좋은 날도 있다. 이렇게 바름을 느끼고 참 기분이 좋다"며 "5남매 잘 키워 출세하게 하고 고생만 하다 10년 전 돌아가신 영감이 생각난다. 이렇게 좋은 날 못보니 아쉽다"고 말했다.

1936년 태어난 강 씨는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을 담은 소설을 배우면서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는 소감도 남겼다.

배움은 끝이 없다. 중학 과정 졸업생은 모두 거창 아림고에 진학한다. 일반 청소년 학생과 똑같은 교육 과정을 밟게 된다. 거창군 등의 노력으로 아림고는 '만학도' 학급을 따로 편성하기로 했다. 게다가 고교 졸업 후에는 거창도립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다. 문해교육 중학 과정 졸업생 배출은 이번이 도내 처음이다.

박종훈 도교육감은 "배움에는 때가 없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어렵다. 여러분의 열정은 큰 울림과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아림고 진학 후 불편함이 없게 준비하겠다. 배움과 도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도내에서 모두 118명이 학력 인정 문해교육을 이수했다. 올해는 도내 18개 기관 59학급에서 문해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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