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협동조합 공동교섭권 보장
납품단가 물가연동제 시행 등
후보 기업상생 공약 대동소이
"거래 단절 등 피해 없게 해야"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는 '오래된 현재'다. 부동산 격차와 함께 사회적 양극화를 일으키는 핵심축으로 작동했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넘게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다 보니, 아예 고착화한 현실이 됐다. 대기업-중소기업 이분법 너머에는 사회적경제도 있다. 영리 추구뿐 아니라 시민 참여·공동체 가치 창출에 무게를 둔 민간 경제활동을 말한다. 각 후보가 내놓은 관련 공약과 공식 석상 발언을 모아 정리했다.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복지공유제 확대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3일 대선토론에서 "전환적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라며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중소기업 간 힘의 균형 회복, 상생의 가치 실현. 이 후보가 내세운 중소·벤처기업 7대 공약의 첫머리다. '자발적 상생협력 생태계를 조성하고, 참여기업에 규제 특례 등 우대제도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은 △중소기업 협동조합의 공동사업행위 허용범위 확대 △납품단가 물가연동제 시행 △대-중소기업 정례회의체 구성 △지방정부에 불공정거래 조사권 부여 △불공정거래 시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 확대 등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납품단가 문제·기술 탈취·하도급업체 원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도 밝혔지만, 자세한 실행 방안은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직속 상생위원회를 설치해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후보는 대기업-중소기업이 상생해 노동자 복지 격차를 메우는 공약도 내놨다. '복지공유제'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 노동자가 대기업 복지제도(휴양시설 등)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대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자발적 참여를 유인해 막대한 재정 투입 없이도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상생산업거점 마련·납품단가 후려치기 근절 =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여러 정책보다 큰 방향이 중요하다"라며 "중소기업에 자유를 줘서 실력으로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공정한 경쟁체계를 만들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창업기업이 유기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산업 거점을 확대하는 한편, 대학·문화·교통이 융합된 창업 혁신 캠퍼스를 개발해 미래 인재들이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강조하는 공약은 △납품단가 물가연동제 도입 △중소기업협동조합 공동교섭권 추진 등이다. 두 가지 모두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이 중소기업에만 전가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들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업계 전반에 같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굳이 조정신청까지 할 필요 없이 납품단가도 같이 올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물가가 올랐을 때,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납품단가 대금 조정을 신청·협의해야 한다. 하지만, 거래 단절 위험을 감수하고 조정을 신청하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 공동교섭권도 목적은 같다. 중소기업이 신청하지 않아도 협동조합이 직접 조정을 신청하게 해 교섭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현재 법은 발의됐지만, 국회에 머물러 있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 역시 "재벌대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중소기업들이 지적하는 기업 양극화의 첫 번째 이유다"라며 "재벌대기업 이윤독식 구조를 깨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실현 방안으로 △납품단가 물가연동제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지방정부 하도급법 위반 조사권·조정권 부여 등을 제시했다.

◇외면받은 사회적 경제 = 한국에는 3만여 개에 이르는 사회적경제 조직(협동조합·사회적기업·자활기업·마을기업)이 있다. 풀뿌리 영역에서 공공적 가치와 영리활동 사이 균형을 찾으려는 주역들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사회적경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견해를 내놓은 후보는 한 명밖에 없다. 국민 관심사가 부동산·청년·성평등 등에 쏠리다 보니 대선 공약 역시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사회적경제인들은 오랫동안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기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가 조직 형태별로 따로 담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통일성 있고 명확한 법적 근거를 갖추기 위해서다. 이미 2014년부터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했고, 이번 국회에서도 같은 상황이다.

이재명 후보는 "국회에 계류된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사회적경제 2.0 시대를 열겠다"라며 "이를 통해 사람과 공동체 가치가 경제·복지의 기준이 되는 포용적 전환사회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경제 기업을 확대하고 지원해, 경제적 약자들이 협력·연대해서 디지털·에너지 대전환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사회적경제 문제를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공약·발언을 따로 내놓지 않았다.

안 후보는 당시 "사회적기업 초창기 국가가 지원하는 일은 당연하다"라면서도 "지속 가능성 없이 계속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NGO를 창업하는 게 맞고, 일반기업 창업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라고 말했었다. 심 후보는 "사회적경제가 국내총생산 10%를 달성하게 하겠다"라며 △대통령 직속 사회적경제위원회 설치 △사회적경제기금 조성 △사회적경제 연구·교육원 설치 △정부 조달 사업에 공공사업 사회적 책임 평가제 도입 등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 제20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각 당 후보들은 납품단가 물가연동제 등 대-중소기업 상생 공약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대-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창원국가산업단지 전경.  /경남도
▲ 제20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각 당 후보들은 납품단가 물가연동제 등 대-중소기업 상생 공약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대-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창원국가산업단지 전경. /경남도

◇더 정교한 공약 필요해 =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공약 중 납품단가 물가연동제·중소기업협동조합 공동교섭권 보장 등은 여러 후보가 함께 내놓은 제도다. 하지만,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현실성을 갖추려면 좀 더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표한 대로 상생을 이루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오병후 창원방위산업중소기업협의회장은 "우선 지방정부 불공정거래 조사권 부여나 손해배상제 확대 등 모두 취지가 좋고, 갖춰놓을 필요가 있는 제도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연동제는 일견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대로 단가에 물가를 연동해주지 않으면 법에 호소해야 하는데 거래 단절을 감수하면서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 공동교섭권 역시 실현되더라도, 결국 납품단가 조정을 원한 중소기업이 특정되기 쉬운 문제가 있다.

오 회장은 "지역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제품을 발주하고 성장을 돕는 상생 체계를 마련해주거나, 어떤 규제가 취지와 달리 기업 발목을 잡고 있는지 현장 목소리를 듣고 난 뒤, 공약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사회적경제계에서는 대선 의제에서 비켜 간 아쉬움은 있지만, 기본법 통과가 먼저라는 견해다. 경남도 사회적경제 자문위원을 지낸 송원근 경상국립대 교수는 "이재명 후보가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조속한 통과를 이야기한 일은 반갑다"라며 "기본법 안에 워낙 다양한 의제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180석 의석이 있어도 법이 제대로 통과되지 않고 있어서 다음 정부에서도 과연 입법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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