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고용률 미준수 기관·기업
도내 연평균 800∼1000곳 달해
손 과장 기업 부담금 부과업무

사회 전반에 나누고 가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정상성'을 규정하는 오랜 편견은 소수자들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공간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 영향은 소수자 삶에만 미치지 않는다. 나머지 사회 구성원 역시 '다름'을 이해할 기회를 빼앗긴다. 모든 사람이 제 역량을 펼칠 수 없는 공동체는 결국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는다. 세대를 거쳐 내려온 편견에 균열을 내야 하는 이유다. 마중물은 부어졌다. 소수자들과 평범하게 동행하는 공간, 당연하지만 아직 흔하지 않은 풍경은 이미 곳곳에 있다.

◇손 과장이 바쁜 이유 = 지난 12일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남지사를 찾았다. 여느 직장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오후. 직원들은 각자의 칸막이 속에서 업무에 열중했다. 이곳에서 만난 손은선(56) 기업지원부 과장은 가장 바쁜 직원 중 한 명이다. 그는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은 도내 기업을 파악해 부담금을 부과하는 일을 맡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상시 50인 이상 민간기업, 그리고 공공기관에 전 직원 대비 각각 3.1%·3.4%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한다. 지키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 중 100인 미만 기업은 부담금 납부가 면제되나, 그 외에는 매년 부담금을 공단에 신고해야 한다. 부담금 부과는 1년 단위로 이뤄지고, 전년도 신고 기한은 다음해 1월이다. 손 과장이 요즘 눈코 틀 새 없이 바쁜 까닭이다.

▲ 손은선 과장이 인터뷰에서 장애인 취업준비생들에게
▲ 손은선 과장이 인터뷰에서 장애인 취업준비생들에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니 지레 포기하지 말고 배우고 노력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그는 "경남에서 장애인 고용 대신 부담금을 내는 기업은 매년 평균 800∼1000곳가량"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큰 차이는 없다. 2020년 기준(2021년 1월 신고) 경남도교육청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2.06%(일반공무원 4.77%, 교육공무원 1.54%)로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경남도청은 3.66%로 기준을 살짝 넘기고 있다.

장애인 고용의무 업무 전담 조직인 이곳은 어떨까. 지난해 12월 기준 공단 장애인 고용률은 13.98%(중증장애인 가산비율 적용)로, 전체 직원 1316명 중 184명이 등록 장애인이다. 다른 기업·공공기관에 쓴소리할 자격은 충분히 갖춘 셈이다. 손 과장도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장애인 중 한 명이다.

◇'청인'들 사이 '농인'일 뿐 = 손 과장은 자신을 농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청각장애인과는 다른 정체성 개념이다. 그는 "농인이란 시각 언어(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며 나름의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듣지 못하는 상태'를 의학적·기능적 손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귀로 듣고 음성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은 '청인'이라고 부른다.

따지고 보면, 손 과장은 쓰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일하는 능력자다. 한국수어가 제1언어지만, 듣지 못할 뿐, 한국어도 충분히 말할 수 있다. 두 언어 체계 모두 한글이라는 문자로 표기할 수 있으니 서류 업무 능력도 빠지지 않는다. 도내 기업들이 제출한 서류를 모두 정리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이유다. 가끔 농인 취업 상담자가 방문할 때도 그의 수화 능력이 빛을 발한다. 손 과장은 "벌써 일한 지 16년이나 됐고, 내 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동료들도 손 과장 업무 능력을 인정한다. 윤성규 취업지원부 대리는 "직원들 중 제일 나이가 많으신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한다"라며 "부담금·사회공헌활동 담당자로 맡은 업무량이 많은데도 빠짐없이 처리할 뿐 아니라, 수어 교육 등 대외 활동도 열심이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과장님 외에도 다른 장애인 직원도 있는데, 사실상 똑같이 일할 수 있거나 더 잘하는 부분도 많다"라며 "함께 일해보면 편견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유일한 공백 메운 근로지원인 = 손 과장에게도 불편한 일이 있다. 전화 업무 혹은 동료와의 의사소통이다. 때문에 입사 초기에는 서류를 정리하는 내부 업무를 주로 맡았고, 동료에게 필담으로 부탁한 일도 많다. 이 같은 업무 갈증은 '근로지원인' 제도 혜택을 받으면서 해소됐다. 이날 손 과장은 칸막이 하나를 두고 옆에 앉은 근로지원인 ㄱ(54) 씨와 수화로 끊임없이 소통했다. 연락할 기업과 내용을 전하자, ㄱ 씨는 간단히 몇 가지를 되물은 후 수화기를 들었다.

근로지원인 사업은 공단이 2014년 시작한 제도다. 노동자가 직접 신청하면 시간당 300원에 하루 8시간, 특성에 맞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매일 손발을 맞출수록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 벌써 1년 3개월째 ㄱ 씨와 일하는 까닭이다.

손 과장 근로 지원 업무도 쉽지는 않다. 부담금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매번 기업 관계자들의 볼멘소리를 접해야 하고, 심하면 욕설을 들을 때도 있다. 그래도 전화를 걸 때면, 먼저 근로지원인 신분을 분명히 밝힌다. 업무 과정에서 오해가 생겨선 안 되어서다. 나이도, 생각도 비슷한 ㄱ씨를 손 과장은 우정으로 대한다.

▲ 손은선(오른쪽)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남지사 기업지원부 과장이 옆에 앉은 근로지원인 ㄱ 씨와 수화로 소통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손은선(오른쪽)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남지사 기업지원부 과장이 옆에 앉은 근로지원인 ㄱ 씨와 수화로 소통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손 과장은 "근로지원인 제도가 있어도 아직 장애인이 느끼는 벽은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 같은 사무직 노동자는 근로지원인 혜택을 충분히 볼 수 있지만, 모든 노동자가 사무직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원칙적으로 일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기 때문에 생산직 노동자들은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일한 시간만큼 시급을 받을 뿐 여타 수당이 전혀 없는 근로지원인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정부·장애인 당사자 모두 노력해야 = 손 과장은 "장애인에게 직접 취업 알선을 돕는 취업지원부에서 한두 달 일했을 때 가장 재미있었지만, 부담금 업무를 포함해, 공단 내에서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고용 의무제가 없었다면 지금 장애인 취업의 문은 더욱 좁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기업이 채용해가고, 정말 상황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은 기초생활 수급제 등 복지체계로 버틴다"라며 "오히려 어중간한 장애인들이 가장 살아가기 버겁다"라고 덧붙였다.

업무 담당자로서 도내 기업들에 하고 싶은 말도 전했다. 장애인이 이미 존재하는 직무에 적응할 수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들이 할 수 있는 직무를 마련할 수 있도록 고민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단이 대형마트나 즉석음식 가맹업체와 협력해 장애인 직무를 개발한 사례를 들었다.

기업에만 맡겨둘 일도 아니다. 예전 한 기업과 함께 열심히 마련한 장애인 직무가 해당 기업이 도산하며 함께 사라진 일도 있다. 반대로 큰 기업은 많은 장애인을 고용했음에도 전체 인원 대비 비율이 낮아 매번 억 단위 부담금을 내기도 한다. 손 과장은 "장애인 고용을 많이 한 회사에 장려금을 확대 지원해 경영을 도와야 하고, 부담금 기준을 세밀화하는 등 고용을 유지·확대할 유인 정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로 폐업 사례도 많은 요즘 장애인 고용 책임을 기업에만 돌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손 과장은 끝으로, 도내 장애인 취업준비생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옵니다. 될지 안될지 몰라도 지레 포기하지 말고 배우고 노력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주세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