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속합의로 표준계약서 '백지화'
당일배송·주6일 업무 조건 포함
노, 합의서 철회·처우개선 요구
무기한 서울 투쟁·100명 단식도
쓰러지는 동료 보고 '연대' 결심

택배업계 1위,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이 배송을 멈춘 지 24일째다. 지난해 12월 28일,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이하 노조)는 파업을 결정했다. 경남 지역 7개 시군(창원·김해·진주·거제·의령·창녕·함안) CJ대한통운 소속 택배 노동자 250명이 파업에 동참했다.

배송 물량이 50% 이상 급증하는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대란을 우려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택배 물품이 오지 않는다는 원망을 떠안고도 택배 노동자들이 배송을 멈춘 속사정은 무엇일까.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택배 노동자 김경민(40)·최진현(37)·박병기(46)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택배노동자는 몸 쓰는 직업이다 보니 구석구석 성한 곳이 없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나서 택배 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승승장구하는 택배산업 이면에는 과로사로 숨진 21명의 택배 노동자가 있었다.

택배 노동자가 된 지 고작 6개월이 지난 최진현 씨는 얼마 전 같이 일하던 형이 쓰러진 걸 목격했다. 형은 근무 시간에 최 씨에게 전화를 걸어 가슴이 너무 아파 계단에 주저앉았다고 했다. 최 씨가 배송을 멈추고 찾아간 곳에 형은 쓰러져 있었다. 과로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협심증이었다.

최 씨는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연대'를 떠올렸다. 택배 노동자 업무 강도는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최 씨가 일하는 곳은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차가 들어가기 어려워 일일이 물건을 옮기거나 아침 일찍 분류 작업에 나서는 노동자도 많다. 그는 "힘들지만 같이 연대하자는 생각으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씨는 6년 전을 떠올렸다. 명절 특수기를 맞으면 분류 작업만 8∼9시간을 했다. 레일을 따라 쏟아지는 택배를 받아 내느라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고 나서 배송에 나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주위에선 과로사로 곁을 떠나는 동료들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 택배 노동자 (왼쪽부터)김경민·최진현·박병기 세 사람은 17일 오후 창원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현재 이재현 CJ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김경민 씨
▲ 택배 노동자 (왼쪽부터)김경민·최진현·박병기 세 사람은 17일 오후 창원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현재 이재현 CJ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김경민 씨

택배 노사는 노동자 과로사를 막고자 지난해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사회적 합의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대 노동시간 주 60시간 이내, 택배 원가 인상, 택배 분류 작업 제외 등을 결정했다. 그러나 노사는 합의문 해석을 놓고 입장이 엇갈리다 파업까지 이르게 됐다. CJ대한통운이 대리점과 맺는 부속 합의서에 '당일 배송'과 '주6일 업무' 조건이 포함됐다. 노조는 주 60시간을 지키면서 해당 조건을 지키는 건 불가능이라 봤다. 또한, 지난해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한 택배 요금 인상분이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고 반발하면서 노사 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진척이 없다.

이들 요구는 안전하게 일할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김 씨는 "(부속 합의서는) 다시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같다"며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숨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파업으로 다음 달 월급은 없다. 이대로라면 딸 학원비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파업은 세 사람에게도 고통이다. 이들은 하루빨리 노사 대화가 이뤄져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택배 노동자의 또 다른 말은 '행복 배달부'. "택배 왔습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와! 택배다!"라고 웃으면서 받아 준다. 박병기 씨는 대문 앞까지 나와 택배를 기다리는 이들을 보면서 회사 다닐 때는 몰랐던 기쁨을 느끼곤 한다. 그는 "돈 벌려고 열심히 하는 거지만, 고객들이 물건을 받고서 기뻐하는 걸 보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웃었다.

행복 배달부는 요즘 사과 배달부가 됐다. 김 씨는 배송 구역 고객들과 물건을 보내는 업체들에 수시로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는 "물건 기다리는 분들에게 빨리 가져다주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물건 보내는 분들은 저같이 어려운 소상공인이 많은데 물건을 제때 못 보내 추가로 택배비가 들어가거나, 그분들 고객이 이탈되는 걸 보면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말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사과에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 씨는 "고객들에게 우리가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설명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고쳐 나가는 게 맞다고 동의해주는 분들도 있다"며 "빨리 파업 끝내고 돌아갈 테니 조금만 이해해주고, 응원해달라"고 전했다.

누군가는 언제 올지 모르는 택배를 기다리는 사이, 노동자들은 한겨울 추위를 뚫고 서울로 향했다. 전국 택배 노동자 2000여 명은 17일부터 무기한 서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단식 투쟁에 나선 택배 노동자만 해도 1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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