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또래 친구와 어울리지 못해
통통 튀면서 생생한 글 줄어

정성을 다해 썼을 어린이 글을 어른이 심사하여 순위를 정하고 상을 가린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늘 천천히 글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늘 확인합니다. '어린이 글쓰기 큰잔치'의 방향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것을요.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진솔하게, 자세히 잘 드러내고 있는지, 자신의 언어로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있는지,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어린이 마음을 읽으려고 합니다. 올해 심사에서도 그렇게 확인하며 어린이 글을 읽었습니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나타나게 되는 어린이 삶을 어린이가 직접 쓴 글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또래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낸다는 어린이들 이야기를 종종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실제 글 속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썩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린이들이 가족과 보낸 시간이 많아서인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가족과 함께한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섬세했습니다. 올해는 어린이 마음이 자세하게 더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가족 소개가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한 가족과의 관계가 글 속에 그대로 녹아있어 마음 따뜻했습니다. 또한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는 친구와의 관계가 특히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어서 건강하게 잘 자라는 어린이 삶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낮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고민 상담을 해주는 친구사랑부'는 친구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함께 고민하려는 어린이 모습이 잘 나타나는 글입니다. "그 친구는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고 슬펐을까?"라고 공감하는 마음, 힘든 친구의 고민을 쉽게 해결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또래들 스스로 마음을 나누는 장면이 그려져 든든했습니다.

▲ 22회 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 심사위원들이 지난 20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응모작을 심사하고 있다.  /이시우 기자
▲ 22회 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 심사위원들이 지난 20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응모작을 심사하고 있다. /이시우 기자

버금으로 뽑은 편지글은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손주를 향한 할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글쓴이의 마음이 의젓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다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좋았습니다. 버금으로 뽑은 또 다른 글, 친구와 딱지를 쳐서 딱지 부자가 된 날의 글 제목이 '학교 가는 날'인데요,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마음대로 가기 어려웠을 어린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학교 가는 날이 더없이 즐겁고 소중하게 다가온 것이겠지요. 홍찬우의 글 '얄미운 누나'를 읽으면 꼭 어디에선가 있을 그런 얄미운 누나 모습이 집안 풍경과 함께 그려져 웃음이 배어납니다.

높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문짝 없는 집'은 어릴 때 안전을 이유로 문짝을 뗐다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글입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문짝 없는 방이 불편해졌다는데,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춘기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핼러윈 파티 준비로 엄마와 신경전을 벌인 6학년 어린이의 글 '엄마 죄송해요'에도 역시 사춘기의 '고약한 심보'를 스스로 다스리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할 줄 아는 아이, 엄마의 사과 말을 들으며 눈물 나고 목이 멘다는 이 아이의 마음이 단단하게 크고 있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1학년 때 지우'를 쓴 어린이는 어린 그때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조용히 드러냈습니다. 가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지요. 그 일을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아빠와 나의 DNA'는 '계속 실실 웃는' 어린이의 아빠처럼 독자도 실실 웃게 만드는 글입니다. 뽀로로라는 놀림을 받아도 원숭이라는 별명이 생겨도 친구처럼 잘 맞는 아빠와 어울리는 재미에 빠져있는 아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올해는 어른처럼 흉내 낸 글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행사로 쓴 글보다 한 해 동안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보내온 정성스러운 글이 많았습니다. 작품 편수도 다른 해보다 많았습니다. 그런데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적어서일까요? 통통 튀는 생생한 어린이 글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이다 싶어 검색해보면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알려졌던 이야기를 가져와 쓴 것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이야기인 듯 쓴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또래와 어울릴 때 상상력도 더욱 높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아지똥>을 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은 '백 마디 설교보다 한 편의 동화가 낫다'고 했습니다. 어른이 쓴 동화든 어린이가 쓴 글이든 독자의 마음을 울리거나 시원하게 뚫어주는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싶은 계절입니다. 글쓰기 큰잔치에 좋은 글을 써서 보내주신 어린이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