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또래 친구와 어울리지 못해
통통 튀면서 생생한 글 줄어
정성을 다해 썼을 어린이 글을 어른이 심사하여 순위를 정하고 상을 가린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늘 천천히 글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늘 확인합니다. '어린이 글쓰기 큰잔치'의 방향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것을요.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진솔하게, 자세히 잘 드러내고 있는지, 자신의 언어로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있는지,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어린이 마음을 읽으려고 합니다. 올해 심사에서도 그렇게 확인하며 어린이 글을 읽었습니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나타나게 되는 어린이 삶을 어린이가 직접 쓴 글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또래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낸다는 어린이들 이야기를 종종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실제 글 속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썩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린이들이 가족과 보낸 시간이 많아서인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가족과 함께한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섬세했습니다. 올해는 어린이 마음이 자세하게 더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가족 소개가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한 가족과의 관계가 글 속에 그대로 녹아있어 마음 따뜻했습니다. 또한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는 친구와의 관계가 특히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어서 건강하게 잘 자라는 어린이 삶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낮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고민 상담을 해주는 친구사랑부'는 친구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함께 고민하려는 어린이 모습이 잘 나타나는 글입니다. "그 친구는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고 슬펐을까?"라고 공감하는 마음, 힘든 친구의 고민을 쉽게 해결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또래들 스스로 마음을 나누는 장면이 그려져 든든했습니다.
버금으로 뽑은 편지글은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손주를 향한 할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글쓴이의 마음이 의젓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다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좋았습니다. 버금으로 뽑은 또 다른 글, 친구와 딱지를 쳐서 딱지 부자가 된 날의 글 제목이 '학교 가는 날'인데요,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마음대로 가기 어려웠을 어린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학교 가는 날이 더없이 즐겁고 소중하게 다가온 것이겠지요. 홍찬우의 글 '얄미운 누나'를 읽으면 꼭 어디에선가 있을 그런 얄미운 누나 모습이 집안 풍경과 함께 그려져 웃음이 배어납니다.
높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문짝 없는 집'은 어릴 때 안전을 이유로 문짝을 뗐다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글입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문짝 없는 방이 불편해졌다는데,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춘기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핼러윈 파티 준비로 엄마와 신경전을 벌인 6학년 어린이의 글 '엄마 죄송해요'에도 역시 사춘기의 '고약한 심보'를 스스로 다스리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할 줄 아는 아이, 엄마의 사과 말을 들으며 눈물 나고 목이 멘다는 이 아이의 마음이 단단하게 크고 있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1학년 때 지우'를 쓴 어린이는 어린 그때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조용히 드러냈습니다. 가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지요. 그 일을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아빠와 나의 DNA'는 '계속 실실 웃는' 어린이의 아빠처럼 독자도 실실 웃게 만드는 글입니다. 뽀로로라는 놀림을 받아도 원숭이라는 별명이 생겨도 친구처럼 잘 맞는 아빠와 어울리는 재미에 빠져있는 아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올해는 어른처럼 흉내 낸 글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행사로 쓴 글보다 한 해 동안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보내온 정성스러운 글이 많았습니다. 작품 편수도 다른 해보다 많았습니다. 그런데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적어서일까요? 통통 튀는 생생한 어린이 글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이다 싶어 검색해보면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알려졌던 이야기를 가져와 쓴 것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이야기인 듯 쓴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또래와 어울릴 때 상상력도 더욱 높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아지똥>을 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은 '백 마디 설교보다 한 편의 동화가 낫다'고 했습니다. 어른이 쓴 동화든 어린이가 쓴 글이든 독자의 마음을 울리거나 시원하게 뚫어주는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싶은 계절입니다. 글쓰기 큰잔치에 좋은 글을 써서 보내주신 어린이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