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의원·검사·판사 아들에게 맞았다
악마보다 더 악랄한 그들을 이기려 결국

어깨가 축 처진 채 터벅터벅 걸으며 '사탄'은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퇴근길은 너무 힘들다. 온종일 인간들 유혹하느라 거짓 약속을 하고, 간드러진 웃음을 웃어가며 일했는데 성과가 너무 적은 것이 너무 힘들다. 집에서 나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 마누라와 자식 보기가 점점 민망해지고 있으니…. 이런 무능한 아빠를 멋진 마귀라고 우상처럼 여기는 어린 새끼 마귀와 그래도 남편이라고 알뜰하게 챙겨주는 마누라 보기가 너무 부끄럽다. 언젠가는 인간들을 왕창 유혹해서 지옥으로 보내야 할 텐데, 요즘은 사람이 마귀인 나보다 더 악마다워 일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네….

사탄은 마귀 짓 하기 힘든 요즘 세상을 한탄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소엔 아빠 발소리만 들어도 뛰어나오던 아들 새끼 마귀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아내 얼굴도 어두운 것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묻습니다. "오늘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애도 안 보이고, 당신 얼굴은 왜 그리 우울해 보여요?" 머뭇거리던 아내 마귀가 한숨을 푹 쉬고는 천천히 말합니다. "오늘 학교 갔던 애가 친구들한테 두들겨 맞고 왔어요. 여태껏 아무 내색이 없길래 그냥 학교 잘 다니는가 했는데…. 사실 학교폭력에 시달리면서 왕따당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사탄은 아내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어떤 놈들이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내 하나뿐인 새끼 마귀를 왕따시키고 두들겨 팬다는 거야! 내 이런 놈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당장 담임 선생을 만나서 따져야겠어!" 사탄의 분노에 찬 절규에 아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렸습니다. "여보, 내가 담임 선생님과 통화해 보았는데 소용없어요. 가해 학생들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검사에 판사까지 우리가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이에요." 사탄은 움찔했습니다. 마귀 세계에서도 '손절' 한다는 국회의원에 검사, 판사라니. 사실 그들은 마귀보다 더 악마 같기에 수많은 마귀가 어떻게 해 보려고 덤볐다가 도리어 지옥 참교육을 당할 정도로 악마보다 더한 놈들이기 때문입니다.

분한 마음과 슬픈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새끼 마귀 방문을 조용히 열었습니다. 새끼 마귀는 잠들었는지 조용했고, 얼굴엔 눈물 자국이 뚜렷했습니다. 사탄은 착잡한 마음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평소 마귀 짓 하느라고 바빠서

놀아 주지도 못했는데…. 이 아비가 못나서 네가 그런 일을 당하다니…." 사탄은 문을 닫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일은 마귀 우두머리인 '베엘제불' 님이나 '루시펠' 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리라….

과연 마귀 우두머리인들 악인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인간의 악은 평범한 곳,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시작됩니다. 이런 평범하기 그지없는 악을 이기려면, 거꾸로 아주 평범한 선한 사람들이 그 힘을 모아야 합니다. 내가 오늘 행하는 작은 선행이 바로 내 아이들과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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