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해봐야겠다' 생각 갖게 하면
아이들은 어느 날 스스로 달라져 있어

수업이 다 끝난 시각, 뒷마당에서 아이들 몇이 드론을 날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복도를 지나던 선생님들도 내다보며 말을 건넨다. 방과후학교인 '과학놀이터' 아이들이다.

교육복지 우선지원의 하나로, 공부에 도움이 필요한 2학년 아이들에게 과학 공부를 하는 방과후학교를 연다고 했을 때,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날이 갈수록 아이들이 이 시간을 좋아하게 되고, 친한 친구까지 데려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비결이 뭘까? 아이들을 맡은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은 '간식'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 내 나름으로 정리한 건 이렇다. 수업을 마치면 아이들은 배가 고플 때이다. 이참에, 아이들 마음을 가장 잘 읽어 줄 수 있는 게 '간식'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간식을 챙기고, 안전하게 요기를 한 다음 활동을 시작한다. 또 하나, 아이들은 억지로 남아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이 강좌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표나지 않게 선발한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비결은 '과학'이란 공부를 실험을 통한 '놀이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플레인 요구르트 만들기 실험으로 '발효'를 배우고, 아이오딘 반응을 이용해 과일음료 속 비타민 함량을 확인하고, 고무동력기를 만들고, 달고나를 만들고, 3D 홀로그램을 만들고, 친환경 오호 물병을 만드는 활동이 이어진다. 갈수록 아이들은 적극성을 띠게 되어, 최근에는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자고 제안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기초학력 책임 지도를 위한 누리샘(온라인 튜터) 세 사람이 왔다. 일대일 또는 소그룹으로 기초학력 지도와 상담을 맡고 있다. 아이들이 잘하는 점을 찾아 칭찬해 준 적이 있는지 물었다. 문제 해결이 잘 안 되어 그만두려는 학생에게 격려와 칭찬을 해 주었더니, 그다음부터 스스로 해 보고 잘 안 되면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번은 아는 문제이지만 모르는 척했더니, 마치 학생과 선생님 역할이 바뀐 듯,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열심히 설명해서 뿌듯했다는 경험을 말했다.

문제를 풀거나 읽기를 할 때 칭찬을 활용하는데, 그때그때는 자신감을 얻고 잘하는 듯하지만, 금방 풀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더 고민해서 방법을 찾아야겠다.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도 있다. 아이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지만 어느 날 보면 바뀌어 있다며 힘을 내라고 말했다.

학교 도서관 복도에서 쓸모가 없어진 신발장을 들어내었다. 도서관과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독서 공간 겸 쉼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혼자 책을 볼 수 있는 칸막이도 만들고,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다. 이렇게 애써 만든 공간이 한동안 별로 활용이 되질 않았다. 아이들에겐 뭔가 부족한 것이다. 도서관 안에 있던 학습 만화들이 복도로 나와 여기저기 꽂히자 아이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아이들이 뭔가를 할 수 있고,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려면 우선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존중,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얼마나 똑똑한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줄을 세워서 판단하는 능력주의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해야 한다. 수많은 온전한 아이를 패자로 몰아넣는 경쟁 교육을 아도르노는 오래전에 '야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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