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출생아 682명뿐…고령화율 40% 넘어서
"소도시 생존하려면 일자리 만들고 자치권 강화해야"

"예전엔 동네마다 사람들로 넘쳐났어. 합천 장날이면 시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로 볼 만했지. 시장 구경은 사람 구경이라고, 오랜만에 장터에서 사람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국밥 한 그릇씩 하고 그랬어. 이제는 장날이 돼도 사람이 없어. 다 옛날이야기가 된 거지."

합천 왕후시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이야기다. 그는 합천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살고 있다. 자녀 5남매는 다 도시로 나가 살고 있고, 부부만 고향집을 지키고 있다. 논농사에 밭농사도 제법 되지만 힘에 부쳐 절반을 동네 젊은 사람에게 맡겼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팔순을 앞둔 어르신은 한의원에 들렀다가 제수를 장만하고자 시장에 들렀다고 했다. 일 보러 간 할머니를 기다리며 막걸리 한 잔하러 가는 참이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합천 왕후시장을 지나 만남을 약속한 노상도 합천읍주민자치위원장 사무실로 향했다. 더위 탓인지 합천읍은 조용함을 넘어 한산했다. 노 위원장은 합천 토박이다. 합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해 다양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시장에서 만난 어르신 이야기를 했더니 당장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 장날인 3일 한적한 합천 왕후시장 거리.   /김태섭 기자
▲ 장날인 3일 한적한 합천 왕후시장 거리. /김태섭 기자

"합천은 한때 20만이 모여 살던 도시였어요. 그런데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솔직히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노 위원장은 한숨 섞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인구가 줄면서 전체적으로 도시 활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도 예전보다 규모가 줄어 면 지역 주민들은 인근 거창과 고령, 진주로 장을 보러 간다고 했다.

"사무실 앞 골목이 버스터미널에서 시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합천읍에 장이 서는 날이면 골목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여 생기가 넘치던 곳이었지요. 지금은 보다시피 장날에도 한산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입니다. 인구가 줄며 장사가 안 되고, 장사가 안 되니 문 닫는 곳이 많아지고. 악순환이 반복돼 시장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 거지요."

합천은 한때 경남 군 지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1966년 18만 9454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었다. 올해 6월 현재 4만 3465명으로 인구 정점 대비 77%나 줄었다. 특히, 고령화율이 40%를 넘었다. 합천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며 노동력 부족, 생산성 저하, 지역경제 쇠퇴 등 사회문제가 이미 현실이 된 곳이다.

아이 울음소리가 그친 지도 오래다. 최근 5년 동안 합천에서 태어난 아이는 고작 682명이다. 해마다 출생아 수는 줄어 지난해에는 110명에 그쳤다. 출생아 감소는 합천군 인구 연령별 분포에서도 잘 나타난다. 올해 6월 기준 0세부터 19세까지 인구는 3867명으로 전체 인구의 8.89%다. 20세부터 64세까지는 50.8%(2만 2081명), 65세 이상은 40.3%(1만 7517명)이다.

합천은 경남에서 지역소멸 위험이 가장 큰 도시다. 지난해 기준 소멸위험지수는 0.1%(남해 0.156%, 산청 0.168%, 의령 0.173%)다. 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에 20세에서 39세까지 여성인구 수를 해당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으로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한다. 수치가 낮을수록 소멸 위험성이 크다는 뜻이다.

노 위원장과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권영식 군의원과 주민 한 명이 자리를 같이했다. 자연스럽게 합천을 걱정하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다들 떠나고 지역에는 어르신밖에 없어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말이 참 오래전부터 나왔는데 합천을 보면 정책이 실패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합천 같은 지역이 쇠퇴한다는 것은 결국 대도시 중심의 성장에도 한계가 왔다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합천에서 인구가 감소한 것은 단순히 합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하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다양한 문제가 일어날 테니까 말이지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지역소멸 문제가 해당 지방자치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급히 국가가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 합천읍주민자치위원회 노상도(가운데) 위원장과 권영식(왼쪽) 군의원, 이동철 씨가 지역소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섭 기자
▲ 합천읍주민자치위원회 노상도(가운데) 위원장과 권영식(왼쪽) 군의원, 이동철 씨가 지역소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섭 기자

권 의원은 열변을 쏟아냈다. 그는 자치와 분권, 지방자치단체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자치단체가 미래 먹거리 산업을 만들지 못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했다.

노 위원장도 말을 보탰다. "결국, 합천 같은 소도시가 살아남으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일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가 움직일 테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지방정부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아울러 지방자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자치권도 강화해야 합니다."

그는 지역 교육 여건과 청년 일자리, 열악한 의료 현실까지 합천의 현실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합천을 걱정하는 마음뿐 아니라 위기를 극복할 의지도 선명했다.

"지역소멸은 공멸의 대재앙입니다. 더는 미루면 안 됩니다. 비수도권 중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주거, 의료, 교육, 문화, 교통 등 국민 기본권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수도권 집중화로 묵묵히 희생됐던 지역을 향해 이제는 국가가 귀를 기울이고 주민들의 목소리에 답을 해야 할 때입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