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이자 충효실천운동본부 대표인 추경화 씨가 경남과 부산지역 출신 항일투사 13인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다.

추 대표는 국가기록원 재판기록과 일제 강점기에 언론 등에 보도된 경남과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3명을 찾았다. 정성호, 강대진, 김종엽, 김규엽, 김영찬, 박우상수, 박성애, 유덕천, 이현속, 장준, 최보림, 정익환, 황용하 선생이다. 진주 출신인 정성호(鄭成鎬·1898~1973) 선생은 진주 3·1운동을 총지휘했다. 사천 출신의 강대진(姜大振·1916~1966) 선생은 1939년 삼천포농민조합에 가입해 항일애국 활동 중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김종엽(金鍾燁·1897~1963) 선생은 부산 출신으로 기장 3·1운동에 동참했고, 그의 동생인 김규엽(金圭燁·1908~1978) 선생은 동래청년동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박우상수(朴又尙守·1906~1973) 선생은 1931년부터 고성농민조합 임원으로 야학교를 지어 무산자녀를 가르치고, 소작쟁의에 관여하다 일경에 잡혀 진주법원에서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진주 출신의 박성애(朴晟愛·1877~1961) 선생은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군자금을 모아 송금하고 대한국민회 소속 경남전도회를 통해 전단지 배포하다 체포돼 5개월 16일간 옥고를 치렀다.

유덕천(柳德天·1904~1973) 선생은 남해 출신으로  1927년 신간회 진주지회 상무간사를 역임하고 학생시위 때 배후 조종자로 체포됐다. 그는 진주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함안 출신 이현속(李鉉續·1900~1943) 선생은 일제가 내선일체, 황민화 정책, 국민총동원,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진주 배돈병원 서기로 근무 중 목숨을 걸고 반대하다 평양감옥까지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아 순국했다.

장준(張駿·1915~1957) 선생은 사천 출신으로 진주고등학교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광주학생 의거에 동참하는 시위와 비밀활동 등으로 수차례 정학·퇴학 처분을 받았고 진주법원에서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

부산 출신의 황용하(黃龍河·1899~1948) 선생은 1919년 3월 13일 동래고보 학생들이 시위할 때 동참하고 시민에게 동참을 호소하다 일경에 체포됐다. 추 대표는 "13명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투쟁하던 분들이다. 모두 정부 포상을 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 신청자를 대상으로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진행한다. 이 심사를 통과하면 행정안전부에 추천되며, 이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의결과정을 거치게 된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재가하면 이들은 독립유공자로 정식 등록된다. 심사는 약 1년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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