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크레모나 소재 국립 현악기제작학교 출신
남다른 손재주·열정 지녀
제작자 대부분 수도권에 "지역 지켜야"김해에 뿌리
연주자가 우승할 때 '보람' 청소년 대상 교육도 꿈꿔

악기를 빚는 사람 조문제(51) 대표를 김해시 동상동에 있는 공방 '조문제스트링'에서 만났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삶을 뒤로하고 제작자 길로 들어선 지 어느덧 24년. 조 대표는 바이올린 본고장인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있는 국립 현악기 제작 학교(IPIALL) 출신 한국인 1세대다. 고조부는 대목수, 증조부는 방짜유기를 만들었다고 하니 감사하게도 남다른 손재주는 타고났다.

◇악기 연주자에서 제작자가 되기까지 = 악기 연주자가 선율을 구현한다면 제작자는 소리를 빚는 사람이 아닐까.

현악기 제작 장인인 조 대표는 대학 시절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연주자의 모습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젊은 날 연주자로서 무대에 오르는 일이 항상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작자로 살기를 더 잘했다 싶습니다. 단계를 밟을수록 결과물도 눈에 보이고 스스로 몰두하며 성취감을 얻었으니까요."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고 또 찾았다. 군악대로 군대 생활을 마친 그는 누나에게 빌린 80만 원과 모아 놓은 돈을 합쳐 독일·이탈리아로 향했다. 남들에게는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말했지만 유학 준비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아서 바이올린 제작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듬해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배움의 과정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 국립 현악기 제작 학교 입학시험에도 단번에 붙었다. 기초과정인 1~2학년을 건너뛰고 전문과정인 3학년으로 바로 입학했다. 바이올린 제작은 목공·미술·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익히고 기르는 과정이었다. 대패질하는데 처음 해보는 게 맞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고는 유학 시절 아버지에게 자랑삼아 말했다가 뜻밖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

"저도 유년 시절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길을 걷다가 뒤늦게 알았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도 무엇이든 만드는 일을 즐겁게 하곤 하셨는데요. 알고 봤더니 고조부가 안동 봉정사 증축에 참여했던 대목이셨고, 증조부는 방짜유기를 만들던 분이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시더라고요."

▲ 조문제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지난달 27일 김해시 동상동 조문제스트링에서 작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조문제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지난달 27일 김해시 동상동 조문제스트링에서 작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 국내 1세대 = 조문제를 수식하는 '크레모나 출신'이라는 꾸밈말은 자부심이자 평생을 배우는 자세로 살겠다는 약속이다.

1990년대 국내서 바이올린 제작은 낯선 분야였다. 조 대표가 1997년에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고 그보다 먼저 제작과정을 밟은 한국인은 7~8명 정도였다. 지금은 한국의 젊은 제작자들이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제작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조 대표는 한국마에스트로바이올린제작가협회(MVAK) 정회원이다. 2011년 출범한 협회는 회원 간 검증 절차를 거치며, 전문 제작자와 수리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협회가 인정하는 바이올린 제작 학교는 엄격하다. 이탈리아 크레모나·독일 미텐발트·미국 솔트레이크 바이올린 제작학교 등 8곳만 속한다.

"제가 파악하기에는 협회 회원이 50명 남짓 됩니다. 대부분 서울·경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실정이고요. 크레모나 출신 중에 부산·경남에서 공방을 차린 사람은 3~4명 정도입니다. 손에 꼽을 정도죠."

협회 회원들 대부분 수도권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이 잘 형성된 까닭이다. 그렇지만 지역에도 연주자가 있기에 수리와 제작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제작자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유능한 연주자가 조 대표가 만든 악기로 대회서 우승할 때다. 그는 바이올린 외에 비올라·첼로도 만든다. 악기를 제작하고 판매·수리하는 과정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첼리스트 이강현과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독일에 유학을 가 있는데 부산 출신의 첼로 연주자 이강현 씨가 제가 만든 첼로로 연주해서 중앙콩쿠르서 1위 했을 때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연주자들도 악기를 한 가지만 고집하지는 않는데요. 대회 주제와 곡에 따라서 올드 악기가 적합할 때도 있지만 현대곡에는 최근 만들어진 악기가 잘 어울려 선호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 조문제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지난달 27일 김해시 동상동 조문제스트링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조문제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지난달 27일 김해시 동상동 조문제스트링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이름을 건 현악기 제작·수리 공방 운영 = 공방을 들어서는 순간 마스크를 넘어 나무 향이 그윽하게 다가온다. 현악기 제작·수리 전문점 '조문제스트링'은 김해시 분성로 351(동상동)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부산에 이어 2호점에 해당하는 김해점은 지난해 9월에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곧장 2000년부터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일했고, 2009년 독립해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방을 부산에서 냈다.

조 대표는 거주지를 김해로 옮겼고 활동 무대를 넓힌 데는 '경남문화예술교육협동조합(마르떼)'을 만난 힘이 컸다. 특히 음악교사 출신인 김세훈 이사장의 적극적인 설득과 응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현재 조 대표는 마르떼 이사도 겸하고 있다.

공간이 주는 매력은 다양한 시너지를 만든다. 조문제스트링 공방이 1층에 있다면 같은 건물 2층에 마르떼 연주홀·카페가 있고 3층에 협동조합 사무실이 있다. 클래식·재즈 연주자들이 만나는 교류의 장이자 악기 제작자와 소통하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조 대표는 현재 악기 제작 못지않게 수리에 몰두하고 있다. 만드는 과정만큼 중요한 게 해체하는 과정이다. 수백만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악기를 수리하고자 분해하는 일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현악기 제작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게 꿈이다. 공방은 현재 소수 정예로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1년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문과정보다 영역을 넓혀 보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나무를 재료로 한 공예는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불어 악기 제작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다양한 교육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경남문화예술교육협동조합에 속해 있는 교육자·기획자들과 협업해서 새로운 길을 찾고 또 찾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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