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는 고통인 이름을 공원에 붙여
어떤 역사를 기리고 물려주려 하는 건가

하긴.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에 무슨 잘못이 있나. '일(日)'에도 '해(海)'에도 잘못이 없다. 잘못 쓴 사람의 잘못일 뿐이다. 그러니 '일해' 두 글자에 씌워진 굴레 하나는 벗겨주자. 15년간 저기 서서 대신 손가락질을 당하는 '일해공원'을 놓아주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었다면 그저 빛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권을 장악하려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앗은 자의 이름,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 지은 자의 이름, 아직도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자의 이름이어서, 한때 대통령이었고 사면받았다고 해도 공원 이름으로조차 쓸 수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부를 수 없고 글로 쓰지도 못할 호(號)라니, 쓰임대로 쓰이지 못하고 찬밥 신세인 이름에게는 미안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살아 있는 칼로 날아와 가슴을 찢는 이름이니 그걸 대놓고 바위에다 새겨 오가는 사람이 보게 하고 부르게 하는 건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되지 않겠나.

이제 절반이 넘는 56%의 합천군민도 그만 일해공원 이름을 바꾸어주자고 하니, 때가 되었다. 일해공원으로 개명한 것이 지역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45.2%)고 하고 공원 이름을 놓고 수년간 벌어지는 주민 갈등이 우려스럽다(56.8%)고 하니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애초 이름인 '생명의 숲'을 찾아주는 것(41.7%)도 좋겠고 적절한 방법으로 또 다른 이름을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명칭 변경 요구가 커지니 군도 이참에 확실히 매듭지을 셈인가 보다. 지역 언론사들이 추천하는 조사기관을 통해 8~9월 중 다시 군민 의견을 묻겠다고 한다. 더는 왈가왈부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조사 방법과 질문도 언론사들이 협의해 결정하는 대로 하겠단다. 좋다. 제발 그렇게 하길 바란다. 수년간 미뤄왔던 일을 이제라도 제대로 해서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니 반가운 일이다.

어느 공간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이냐 하는 것은 부르기 좋거나 싫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 이름을 지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간 이름에도 그곳의 정체성과 가치, 지향점, 다양하고 깊은 철학이 담긴다. 공공의 공간이라면 수십, 수백 년간 불릴 이름 자체가 공공의 기록일 것이고, 따라서 공공의 장소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 하는 것은 곧 공동체가 어떤 역사를 기리고 물려줄 것이냐 하는 문제다.

그런데도 인기 연예인 이름을 도로에 붙였다가 그 사람이 지탄의 대상이 되면 부랴부랴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친일 행적 인사의 이름을 문학관이나 음악관 같은 곳에 붙였다가 논란이 돼 바꾸는 일도 종종 생긴다. 우리는 그 이름을 빌려 후대에 무엇을 남겨주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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