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병로(病老)가 되어 더위를 타는 체질로 바뀌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필자는 덥다 소릴 절대 입 밖으로 안 내는 지독한 인서파(忍暑派)로 소문이 났었습니다. 누가 놀려줘야지 하는 심술로 "오늘 이 39도 가마솥 무더위를 설마 시원타 하시지는 않겠죠?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독하게 참고 계신 거죠?" 해도 대답은 늘 동일. "극심하게 포근하구먼."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구업(口業)이 되어 업보로 되돌아온다는 불가의 잠계는 유현(幽玄)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세인들이 "야, 이건 살인 더위다!" 하는 자극적인 말에도 내 나름의 끌탕을 하곤 합니다. "쯧쯧, 더위한테도 귀가 있을 텐데 섭리에게 살인 운운하다니 원. 그런 욕에 발끈한 더위가 폭염 맹위로 맞받아치는 줄도 모르고…." '더위를 물리친다'? 이 말에 "더위가 공산군이냐?" 응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피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즐겨라' 쪽이 현책이 아닐까 합니다.

 

어희가 퍽 재밌는 다방

<雪夜>로 안내하겠습니다.

"아니, '눈 내리는 밤'이

덥긴 왜 이리 덥습니까?"

마담의

재치에 땀이 갭니다

"난 춰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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