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본질 성찰·장기 비전 실종
관광객용 아닌 주민들 잔치로

축제가 멈췄다. 축제에 기대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집단 면역 상태에 도달하더라도 예전 상황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 전망대로 더 센 감염병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면 지역 축제와 축제를 둘러싼 경제생태계는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지금 우리가 즐기는 축제는 대부분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지방자치제'의 결과물이다. 그 이후 매년 축제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축제가 각광받은 이유는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명분'과 유권자와 소통이라는 정치인의 '실리'가 컸기 때문이다. 축제가 끝난 뒤 수백만 명이 다녀가고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거뒀다는 관청의 거품 낀 보도자료는 지금의 축제가 지향하는 가치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관광객의 '지갑'이 지상 목표가 되다보니 그것을 열 수 있는 수단을 앞뒤 가리지 않고 동원했고, 그 결과 전국의 축제 프로그램과 관광인프라가 어슷비슷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 지역은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기 훨씬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깊은 축제 자산을 여럿 갖고 있다. 진주의 개천예술제와 창원의 진해군항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현대축제로 전국 문예인들의 등용문으로 각광받았던 개천예술제의 현재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군항제는 2002년 드라마 <로망스> 덕분에 새 동력을 수혈 받아 제법 많은 관광객을 아직 유치하고 있지만, 군항제만의 차별점을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작금의 지역 축제는 제동기가 고장난 기관차 같다. 정치인을 비롯해 축제에 음양으로 기댄 사람들의 당위에 찬 목소리가 지역 사회에서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축제 성격에 대한 성찰의 고민과 냉정한 평가,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를 대비하는 장기적인 비전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매년 방문객이 얼마나 늘었는지, 경제 효과는 몇 퍼센트나 증가했는지 그 숫자만이 유일한 평가기준이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멈춤은 축제를 혁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축제의 본질을 재확인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강릉 단오제를 참고하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강릉 사람들 마음속에 단오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 타지 사는 강릉 사람들은 단오에 맞춰 연차 휴가를 내고 고향으로 향한다. 추석과 설날처럼 그들은 단오를 '쇤다'. 축제 기간 음식점들은 자기 메뉴를 접고 감자전에 단오주, 즉 '단오메뉴'를 내놓는다. 지역 정보지는 '단오특별판'을 찍고, 동네 가게들은 '단오 세일'을 한다. 강릉 사람들에게 단오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상품이 아니라 자기 공동체, 즉 '강릉인'을 확인하는 잔치다.

창원 사람에게 군항제는 무엇일까? 진주 사람에게 개천예술제는 어떤 의미일까? 이제는 관광객이 아닌 시민의 마음을 기준으로 축제 좌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코로나 멈춤을 축제 혁신의 기회로 활용하자. 남강유등축제 유료화로 한창 시끄러울 때 한 진주시민이 내뱉은 분노의 목소리는 축제 혁신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축제라는 기 준비할 때부터 신나고 뭉치고 그래야 되는 거 아입니꺼? 돈이 되니마니 계산부터 하고 이기 믄 축젭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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