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의 버팀목 되는 것
그것이 학교의 본질이어야 한다

"으이구, 너는 '돈 많이 드는 사춘기'를 하는구나, 너의 형은 '성격 까칠한 사춘기'로 그렇게 나를 괴롭히더니… 쯔."

아침부터 고급 브랜드의 신발과 바지, 티셔츠까지 이것저것 '간지'나는 패션을 졸라대는 아들을 겪으면서 '사춘기'를 떠올린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과정 사춘기. 각자를 돌아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사춘기를 건너간 경험이 있을진대. 나는 철학하는 사춘기를 보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했다. 우울했다. 답도 찾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이 터널을 지나 뭔가를 만나 따져보고 싶었다.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 시절 또래들보다 더 책을 파고들었다.

훌륭하다고? 책을 많이 읽는 건전한 사춘기를 보내서? 아니다! 책은 혼자 읽으면 안된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며 함께 읽어야 한다. 독선과 독단에 빠지는 사춘기는 위험하다. 학교는 이런 온통 사춘기인 아이들을 온전히 견뎌내고 키워내야 하는 곳이라는 걸 교직에서 한걸음 멀찍이 떨어져 나온 이제야 어슴푸레 깨닫는다.

청소년기는 어느 때곤 다 사춘기다. 고통과 왜곡된 세계를 자신의 시각으로 만들어내고 부수고 깨고 심지어는 파괴의 수준으로 스스로를 멸망으로 치달을 때도 그건 사춘기다. 알을 깨고 나오는 저마다의 과정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 과정에서 우울함과 빗나간 행동은 어떻게 보면 차라리 정해진 수순이다. 성인이 된 우리가 그들과 더더욱 곁에서 함께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폭력 사안 접수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무겁다. 따돌림의 피해 학생이든, 폭력의 가해학생이든 어느 쪽이든 모두 우리 아이들이다. 보고서에 줄줄이 드러나 있는 폭력 상황의 묘사는 한 편의 비극이다. 그 서사를 애써 외면하며 학교폭력이라는 폴더에 집어넣는다. 나의 손의 무게도 순간 천근만근이다.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회부된다. 유형도 다양하다. 특히 사이버 상으로 친구들에게 남기는 욕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교에서 20여년을 재직하며 다양한 청소년 비행을 경험했던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주는 단어와 문장이다. 난감하다. 사실을 알게 될 부모님에게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한번에 가야될 서류만 해도 수십 장이다. 고단한 업무를 하는 중에도 우리 아이들이 왜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건강한 사춘기에 대한 고민이 꼬리를 문다. 우리가 무엇을 못하였는지 반성도 해본다. 심의위에 오셔서 애쓰는 부모님의 노력을 사건 발생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다른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고도 싶다. 답답한 마음은 그래도 학교를 향한다. 문제가 발생한 곳이자 해결될 수 있는 곳. 교문을 통과한 아이들 하나하나 학교에 머무는,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그들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자. 바쁜 학부모님들을 대신해서 건강하게 사춘기를 통과한 선생님들이 든든한 지지와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자. 친구들과 사이좋게 웃고 떠들고 책읽고 대화하다가 하교의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하자. 그것이 학교의 본질이다. 본질이어야 한다.

이미 반쯤 넘어간 듯 보이는 나의 눈빛에서 희망을 발견한 아들의 눈이 반짝인다. 있지도 않은 아들의 여자친구를 들먹이며 "그래 아들아,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면 어쩔 수 없지. 그거 얼마면 되니, 사러가자! 아니 온라인으로 사라." 오늘도 내 돈은 아들의 사춘기 속 소용돌이로 폭풍처럼 사라질 예정이다. 결제를 클릭하는 나의 손이 천근만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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