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600m 쇠목재 향한 길 땀 흠뻑 젖어 몸 천근만근
소나기 피해 잠시 쉬기도
의령∼함안 잇는 정암철교 솥바위·남강 풍경 한가득
쌓인 피로 사르르 녹는 듯

햇볕이 따뜻한 고장, 의령을 가면 늘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의령 하면 논이나 산이나 건물이 햇빛을 오롯이 받아 안은 풍경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번 의령 자전거 여행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여름이기에 햇볕이 뜨거웠지만, 산 정상 부근에 있던 비구름이 소나기로 땅을 적셨다. 흙이 묻어 있던 자전거는 비에 씻겼다. 비가 그친 의령은 역시나 햇볕에 빛났다. 충익사~가례면~자굴산~쇠목재~한우산~벽계저수지~망우당곽재우생가~이병철생가~정암철교로 이어진 70㎞ 여정을 소개한다.

◇귀를 간질이는 소리

출발지인 충익사 앞 담벼락 주변에는 무궁화가 활짝 펴 있었다. '충의의 고장'답게 의령 도로변과 곳곳에서 무궁화를 볼 수 있다. 충익사에서 의병교를 건너 맞은편에 보이는 군청 앞으로 향했다. 소고기국밥집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힘든 여정을 대비해 한 식당에서 8000원을 내고 아침으로 국밥을 먹었다. 든든히 속을 채우고 본격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의령읍내를 빠져나와 북서쪽 가례면으로 달린다. 바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에 있는 가례로를 탄다. 5분만 가면 '청정 밭미나리의 고장 가례면'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근사한 풍경에 눈이 먼저 반응하지만, 귀도 깨어난다. 이는 창문을 닫은 채 차로 달리면 느끼기 어렵다. '푸드덕' 논에서 백로가 날갯짓하고, '맴맴' 매미가 울고, '콸콸' '졸졸' 개울이 흐르고, '왈왈' 개가 짖고, '부스럭' 고양이가 움직이고, '꼬끼오' 닭이 울고…. 괴진교 일대를 지나는데, 다양한 여름 소리가 들렸다.

자굴산치유수목원과 일준부채박물관을 지나 10분 정도 달리면 퇴계 이황과 인연이 있다는 서암(書岩)저수지가 나온다. 반대편 매끈한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2㎞를 달리면 경남소방교육훈련장이 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가파른 훈련장 출입로가 보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고, 이제 저런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고?'

▲ 한우산 아래 쇠목재(600m)로 가는 길은 4㎞ 남짓이다. 경사도 10% 이상 길고 힘든 오르막이 쉬었다 가라고 유혹한다. 멀리 줄지어 선 한우산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서동진 기자
▲ 한우산 아래 쇠목재(600m)로 가는 길은 4㎞ 남짓이다. 경사도 10% 이상 길고 힘든 오르막이 쉬었다 가라고 유혹한다. 멀리 줄지어 선 한우산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서동진 기자

◇차가운 비

소방훈련장 450m 앞 왼쪽에서 자굴산로가 시작된다. 오른쪽에는 멀리 한우산 등성이를 따라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서 있고 구름이 낮게 걸려 있었다. 자굴산로를 처음에는 직진으로 올랐다. 하지만 점점 힘에 부쳐 갈지자를 그리며 차근차근 페달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쇠목재까지 3.8㎞, 최고 높이 600m 정도다. 10%·8%·14%·11%·16% 등 경사도를 설명해주는 표지판이 군데군데 있었다.

머리에서 땀방울이 주르륵주르륵 흘렀다. 땅바닥에 납작해진 개구리와 뱀 사체를 보고 이따금 놀라기도 했다. 날파리가 머리 부근에 달려들며 귀찮게도 굴었다. 중간 지점에서 갑을마을 전망을 보고 맞은편 한우산 산세를 감상하면서 잠시 쉬었다. 쇠목재 정자가 있는 곳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쇠목재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마시고 있던 때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렸다. 굴다리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비는 차가웠고, 몸이 으스스 떨렸다. '차가운 비가 내린다'는 한우산(寒雨山·해발 836m)의 이름 그대로였다. 한우산 정상에서 궁류면 방면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찰비골 역시 한여름에도 찬비가 내려 원래 '찬비골'로 불렸다고 한다.

쇠목재에서 한우산으로 오르는 도로는 주말에 차량을 통제해 자전거를 타기 좋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한우산생태숲홍보관까지는 1.3㎞, 20분 정도 더 올라가야 했다. 이곳 홍보관은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읽을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았다.

다양한 새소리도 귀를 간질였다. 한우산에는 파랑새·청딱따구리·소쩍새·검은등뻐꾸기·부엉이·오색방울새 등이 산다고 한다. 이 일대 산맥 형상은 황소를 닮았는데, 자굴산은 머리, 한우산과 응봉산은 몸통이라고 전해진다. 한우산 숨길 중간부에는 한국전쟁 직후까지 호랑이가 목격됐다는 덤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 기암절벽 봉황대. /이동욱 기자
▲ 기암절벽 봉황대. /이동욱 기자

◇오랜 세월 견딘 나무

홍보관에서 5분만 더 오르면 한우정 전망대가 있다. 뿌연 비구름에 가려 전망을 즐기기는 어려웠지만, 몽환적인 운치가 있었다. 이제 구불구불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한우산생태주차장을 지나 찰비계곡까지 6㎞, 20분 정도가 걸렸다. 여기서 벽계저수지를 건너는 정동교까지는 10분을 더 갔다. 정동교 옆에는 산책로를 내고 출입구 쪽에 호랑이와 도깨비 조형물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좀 더 달리니 저수지 수상태양광 시설도 볼 수 있었다.

산 아래는 정상과는 완전히 다른 날씨였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왔다. 벽계로에서 유곡천을 따라가 청정로를 탔다. 10분 남짓 가니 일붕사 뒤로 거대한 비석처럼 생긴 기암절벽 '봉황대'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금강산 절경의 축소판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마두교를 건널 때 오른쪽에 보이는 유곡천과 기암절벽도 조화를 이뤄 눈길을 붙들었다. 옥동교 너머 자갈이 많아 보였던 하천, 나무 그늘로 덮인 도로, 유곡피암터널 등도 가는 길을 지겹지 않게 해줬다.

목이 말라 점빵이나 슈퍼마켓을 찾았는데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유농오토캠핑장 입구에서 음료를 팔고 있었다. 여기서 목을 축이고 안쪽에 있는 출렁다리에서 고요한 유곡천과 기암절벽의 풍광을 바라봤다.

10분 남짓 달리면 왼쪽에 세간교가 있다. 나팔꽃이 다리 난간에 활짝 펴 있었다. 마을 앞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건 600년 세월을 견딘 의령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천연기념물)다. 지금은 높이 15m, 가슴 높이 둘레 7m인 이 나무에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큰 북을 매달아 의병을 훈련시켰다고 전해온다. 이 나무 앞에는 성벽과 창 디자인을 활용한 작은 의병기념공원이 있다.

차량 1대 정도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마을 안길로 들어가다 보면, 널찍한 공간에 있는 망우당 곽재우 생가와 곽재우장군문화공원이 나온다. 생가 앞에 있는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 역시 600년 정도 됐는데, 높이 24.5m·가슴 높이 둘레 10.3m로 규모가 더 웅장하다. 마을 사람들이 풍요와 무병장수를 빌었던 나무다.

▲ 정암철교에서 바라본 솥바위와 남강.  /이동욱 기자
▲ 정암철교에서 바라본 솥바위와 남강. /이동욱 기자

◇정암철교에서 본 절경

곽재우 생가에서 빠져나와 왔던 길로 1.5㎞만 돌아가면 야산삼거리가 있다. 여기서 왼쪽에 있는 의합대로로 자전거 머리를 돌렸다. 달재고개를 넘었는데, 10분가량 페달을 밟는 게 제법 힘들었다.

곽재우 생가에서 정곡면 이병철 생가까지는 30분이면 도착한다. 곽재우 생가에서는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문을 닫은 상황임에도 이병철 생가에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의령을 찾는 사람들이 진정 누구를 기려야 하고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진등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고개를 넘는 옛 도로로 갔다. 체력이 고갈돼 힘들었지만, 20분만 버티니 괜찮았다. 인적이 드물어 길은 풀벌레 소리로 가득했다. 내리막길에서 슬쩍 보았던 남강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25분여를 더 달려 농경문화테마파크를 지나고 백야교를 건너 정암철교에 다다랐다. 길이 259.6m·폭 6m로 의령과 함안을 이어주는 다리다. 철교 위에서 좌우 풍경을 바라봤다. 정암루, 솥뚜껑을 닮은 솥바위, 모래톱, 남강, 비 온 뒤 구름이 빚어낸 절경에 피로가 잊히는 듯했다. 의령천을 끼고 읍내로 돌아왔다. 한 식당에서 시원한 소바를 먹고 나왔더니 하루가 거의 다 저물었다.

 

■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 =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는 '곽재우장군문화공원'이 있다. 활쏘기·모형 말타기 등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규모는 1만 9850㎡다. 의병 역사와 의병장 곽재우(1552~1617) 장군 관련 기록이 담긴 설명판 등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곽 장군 생가를 만나게 된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별당, 큰 곳간, 작은 곳간, 대문, 문간채 등 7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사대부 가옥 형태로 꾸며져 있으며 규모는 5636㎡다. 2005년 의령군에 의해 복원됐다. 왜적이 침입하자 곽 장군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은 장소인 세간리 현고수(천연기념물 제493호)는 마을 입구에서 만날 수 있다. 1552년 세간리에서 태어난 그를 떠올리며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충익사는 곽 장군과 17장령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홍의장군으로 불린 곽 장군의 시호가 충익이어서 이름이 충익사다. 의령천과 남산 사이에 자리한다. 충익사에 전시된 의병들 유물을 통해 임진왜란 전투 장면을 느낄 수 있다.

충익사 뒤쪽에는 박물관이 있다. 고고역사실과 의병유물전시실 등으로 구성된 의병박물관이다. 의병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들이 현재 전시장에 나와 있다.

이와 함께 한우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한우산생태숲홍보관', 의령군과 함안군 사이를 지나는 남강에 설치된 '정암철교'(국가등록문화재 제639호), 남강 한가운데에 있는 솥 모양을 한 커다란 바위 '솥바위'도 볼거리 중 하나다. 의령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굴산과 한우산 정상도 가볼 만한 장소다.

◇먹거리 = 자전거유람단은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오전 9시께 소고기국밥을 먹었다. 콩나물과 소고기가 듬뿍 담긴 국밥으로 빈속을 달랬다. 얼큰한 국물 맛이 좋아서 그릇 바닥이 보일 때까지 숟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그렇게 먹다 보니 국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그다음 끼니는 소바였다. 단원들은 오후 6시께가 돼서야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했다. 냉소바와 비빔소바를 먹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얼음이 담긴 냉소바 국물을 들이켰다. 70㎞ 넘게 페달을 밟고 나서 먹은 시원한 국물이 더위를 날려주는 듯했다.

◇놀거리 = 벽계관광지는 의령이 추천하는 의령 9경 중 4경에 해당하는 곳이다. 벽계저수지와 봉황대, 찰비계곡 등이 벽계관광지에 있다. 야영장(90동), 방갈로(12동), 야외수영장, 물놀이시설,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어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 찰비계곡도 피서객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명소다. 찰비는 삼복에도 겨울비 같은 찬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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