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받고 마을 골목길 청소, 농사일 어느새 뒷전
허투루 쓰이는 사업 예산 농민수당 등으로 일부 돌려야

함양 사는 농민 김석봉(64)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산촌일기가 화제가 됐다.함께 사는 마을사람들이 노인일자리사업에 나서는 모습을 통해 보편적 농민소득제도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전달한 것이다. 농업직불금제도와 농민수당, 농촌기본소득 같은 보편적 농민소득 보장을 주장하고 강조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농민소득보장제도의 필요성을 호소력 있게 전달한 그의 산촌일기 일부를 인용한다. 더불어 농업직불금제도와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 등 보편적 농민소득 보장제도의 흐름과 개념을 소개한다.

▲ 농민들은 그저 농사짓고 함께 어울려 새참 먹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농민들이 농사 편하게 짓도록 해달라!   /김석봉 씨 페이스북
▲ 농민들은 그저 농사짓고 함께 어울려 새참 먹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농민들이 농사 편하게 짓도록 해달라! /김석봉 씨 페이스북

"석봉 씨, 다음 달부터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가하지 않을래요?"

이른 봄부터 이웃들이 노인일자리사업에 동원되고 있다. 일주일에 사흘, 하루 세 시간씩 마을 골목길 정리와 청소를 하는 일이다. 이 산골마을에 무슨 할 일이 그리 많다고 여덟 명이나 되는 이웃 농부들이 하루걸러 한 번씩 마을 청소 일에 나서는지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그나마 일거리가 꽤 있어 보이더니 그 일이 마무리되자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듯했다.

작업하는 날 잠시 나와 골목 한 바퀴 돌면 삼만 원 정도 되는 품삯을 받았다. 이 산골마을에서 한 달 삼십만 원이 적은 돈인가. 그러니 이웃 농부들은 농사일이 며칠씩이나 밀려도 이 일에 나서려 했다. 처음 참가자를 뽑을 때는 서로 먼저 하겠다고 법석을 떨어 이장이 골머리를 앓았다.

상반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한 이웃은 열세 명이었다. 마을 청소에 여덟, 마을 입구 요양원 청소하는 일에 셋, 마을 보건진료소 허드렛일에 둘이었다. 그렇게 많은 주민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하다 보니 한창 일 철이 되어도 논밭은 한산했다.

'저렇게 해서 농사가 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감자밭에 퇴비 내고, 밭갈이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도 논밭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이웃마을 트랙터가 와서 밭갈이를 하는 날이면 서로 먼저 하려고 다툼이 생겼다. "우리 밭 먼저 해달라고 했는데 왜 새치기를 해?", "트랙터 기사가 하는 일이지 새치기는 무슨 새치기야?"

이웃끼리 언성을 높이는 일이 벌어지고, 그 일로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도 늘었다. 상반기 노인일자리사업 참가자가 정해질 무렵 아랫담 '오샌'으로부터 자기네 고사리밭 고사리 꺾겠느냐며 연락이 왔었다. 경운기 사고로 몸을 다쳐 며칠 병원 신세를 졌지만 알고 보니 노인일자리사업 때문이었다.

오 씨는 마을 들머리 요양원 잡일에 배치되었는데 매일 나가야 하는 일자리여서 월급도 상당했다. 부인마저 요양보호사로 일하니 농사일을 할 겨를이 없었을 거였다. 삼거리 갈림길 옆에 사는 김 씨도 요양원에 배치되어 자기네 고사리밭을 이웃마을 젊은이에게 넘겼다. 농부로서 삶을 포기하는 이웃이 늘었다.

하반기 노인일자리사업에 나선 이웃 농부들은 무려 서른 명이나 됐다. 아랫담 청소하는 일에 열 명, 중간담 청소하는 일에 일곱, 웃담 청소하는 일에 일곱이었다. 거기에 경로당 관리에 셋, 보건진료소 허드렛일에 둘, 마을 들머리 요양원 잡일에 셋이 배치되었다. 매주 월·수·금요일면 골목에 연두색 조끼를 입은 청소부대가 나왔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조그만 마을에 무슨 할 일이 많겠는가.

일꾼도 문제였다. 삼십만 원의 위력은 대단해서 이웃 농부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허리가 아파서 끙끙대던 골목 안 서 씨, 두 무릎 인공연골수술로 지팡이에 의지하는 '안샌댁'마저 이 일에 앞장서다시피 했다. 서른 마지기나 되는 잡곡농사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던 명철이 형도 부부가 함께 이 일에 나섰다.

그렇게 일주일에 사흘 오전 시간을 노인일자리사업에 매달리니 쉼이 있을 턱이 있나. 서늘한 오전 시간 다 빼앗기고 점심 먹기 바쁘게 논밭으로 나가 땡볕에서 일하는 이웃 노인네들의 삶이 안타깝고 가련해 보였다.

하루는 밭일을 나가는데 마을 뒤편 산촌생태마을에 웃담 청소부대가 모여 있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우리 조는 여기 산촌생태마을 청소담당이거든." 조장으로 참가하고 있는 시끄러비아지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아니, 여기는 마을에서 외지인에게 임대를 준 곳이잖아요. 여기 사장이 마을 주민을 고용해서 청소를 하든가 해야지 왜 정부 일자리사업 참가자가 여기 일을 한대요?", "우리가 뭘 알아. 이장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그들은 주차장 풀 뽑기를 하는 듯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주차장 여기저기에 호미가 몇 개 널브러져 있었다. 산림청에서 예산 들여 지어준 산촌생태마을은 마을공동사업장이 아니라 개인사업장으로 운영되었다. 마을에서 운영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낯선 외지인에게 임대료 받기로 하고 임대계약을 해준 곳이었다.

임차인이 얼마를 벌어 어디에 쓰든 마을에서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시설인데도 산림청은 관리인에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지급하고 있었다. 군청 공무원은 그렇게 운영되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 몰라라 했다.

▲ 2020년 7월 22일 진주시농민회가 경남도청 서부청사 앞에 '공룡알 선전탑'을 만들어 조속한 농민수당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 2020년 7월 22일 진주시농민회가 경남도청 서부청사 앞에 '공룡알 선전탑'을 만들어 조속한 농민수당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농사가 쉬운 일인가. 농부가 그리 한가한 사람인가. 노인일자리라는 미명 아래 농사는 일당 삼만 원에 밀리고, 농부는 잡부가 되어버렸다. 차라리 그런 예산으로 농부들 점심 한 끼라도 건강하게 차려주면 어떨까. 저런 예산으로 젊은 농부를 고용해 하루 서너 시간씩이라도 노인 농부들의 농사를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농부가 마음 놓고 농사를 짓도록 도와주고 배려하는 정책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저런 정책 같지도 않은 정책으로 예산을 쓰느니 그 정도의 돈은 거저 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바이러스의 시절 어마어마한 재난지원금을 생각하면 이리 밀리고 저리 내쳐지면서도 꿋꿋이 이 땅을 일구어 온 농부들에게 얼마 정도 생활안정자금을 줘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쯤에서 '농민수당'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농부를 잡부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농부로서 자존감과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농민수당'이나 '농민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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