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 존중 않고 비난만 하기도
동물성 음식 끊고 몸 건강 찾아
분노 줄고 말·행동도 온화해져
다양성 이해하는 세상 오기를

사람들은 내게 많은 질문들을 던지는데, 그것은 대부분 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비건 채식에 관한 질문들이다. 비건 채식을 시작한 지는 햇수로 11년이 되었고, 나는 그동안 다양하고 수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때로는 공격적인 질문도 있었으며, 결국 논쟁으로 이어져 분위기가 서먹해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그가 정말 궁금해서 질문을 한 게 아니라,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이 정해져 있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질문을 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반면 자신의 모든 기성관념을 내려놓고 경청해주는 이를 만났을 때는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중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 태도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채식을 비난하기 위한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채식을 왜 하게 되었는지, 하는 평범한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내가 대답을 하면 할수록 말꼬리를 잡는 방식으로 나아가거나 "그럼, 식물도 생명인데 왜 먹느냐?"고 되묻는 식으로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오는 사람에게는 나도 곱게 말하기가 싫어진다. 심지어, 식물이라는 생명체를 너무나 증오하는 나머지 아득아득 씹어 먹으려고 그런다고 말하기도 하고, 1시간 정도 시간을 주면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보겠다고 심술을 부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모두 소용없고, 그저 소모적일 뿐이다. 그럴 때는 내가 비건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곤 하는데, 사실 기분이 상할 때는 그때뿐이 아니다.

◇존중·배려 부족 여전 =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즐거워야 하는데 좌불안석일 때가 자주 있다. 동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나의 식성을 존중하고 배려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내가 비건 채식을 하기 때문에 식당을 정하기가 어려웠다는 말로 시작하여,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고, 심지어 고기를 권하기도 한다.

한 번은 그런 상황에서 정중하게 사양을 하였더니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느냐고, 장수해서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애초 나의 건강을 위해서 고기를 권해 놓고, 사양을 하니 오래 살아서 좋겠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말씀하신 그분께서는 평소 운동도 하지 않고, 배달음식과 외식으로 주로 식사를 하시며, 가공식품과 즉석식품도 자주 드시는 분이었다.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특히, 연세가 높고 친하지 않을수록 잦다. 언젠가 그런 자리에서 코피가 살짝 난 적이 있는데, 고기를 안 먹어서 그렇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꼭 동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건 채식의 어려움은 카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커피가 몸에 맞지 않아 마실 수 없는 나는 유제품을 먹지 않기 때문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좁다. 그나마 생과일주스에도 우유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 이것도 저것도 쉽게 주문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일부 카페에서 허브티를 주문할 수 있을 때 고마운 마음마저 드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마치 내가 뭐라도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카페 주인에게 남모르는 배려라도 받은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빵집에 가도, 생일모임에서 케이크를 대접 받아도 나는 언제나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대부분의 제과 제품에는 우유, 버터, 달걀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선의의 선물을 받아도 그리 기쁘지가 못하다. 기쁘게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 비건의 날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 비건의 날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혼자 분식집에 가도, 백반전문점에 가도, 냉면이나 막국수 집에 가도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를 확인하고 무엇, 무엇, 무엇은 반드시 빼 달라고 미리 요청을 해야 한다. 어떤 사장님께서는 흔쾌히 다른 재료를 대체해서 해주시기도 하지만 빼 달라는 대로 빼고 한껏 빈약해진 음식이 나온 적도 많다. 그래도 나는 남김없이 맛있게 먹는다. 이 음식은 익명의 손님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따금 사람들은 걱정한다. 먹을 게 없어서 어떡하느냐고. 나는 다만 갈비, 회, 찜닭, 낙지볶음, 조개구이, 족발, 돈가스 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 동물성 양념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면 고를 수 있는 음식이 적어서 고민도 적다. 다만 먹을 게 전혀 없는 경우의 이유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식당에서 채식 음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야지, 내가 유별나게 비건 채식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나와 함께 갈 곳이 없는 이유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식성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자신에게 익숙한 식문화에 상대방이 무조건 맞춰주기를 원하는 마음도, 고기를 함께 들지 않는 나를 보면서 못 먹어서 어떡하느냐는 말도 삼갔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외식의 경우는 그렇고, 사실 집에서는 곡물, 과일, 채소, 해초 이 네 가지만 떠올려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적어도 수백 가지에 달한다.

◇변화 = 사람들이 주로 하는 질문 중에 가장 비중이 높았던 건 역시, 채식 이후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나는 비건 채식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다. 우선은 집에서 밥상을 차릴 때 조리하는 시간이 매우 짧아졌고, 식사 후 치워야 할 이런저런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조리하고 치우는 시간은 짧게, 먹는 시간은 여유 있게 가지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다. 그 때문일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그만큼 또 건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채식 이전의 나는 매년 서너 번씩 감기에 걸렸었다. 장염과 위염도 자주 걸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감기와 장염이 함께 찾아오기도 하고, 늘 만성 피로에 시달렸다. 삶 자체가 피곤해서였겠지만, 무엇보다 매 끼니 편의점 도시락, 패스트푸드, 돈가스, 탕수육 등을 먹고 회식 때는 삼겹살이나 갈비, 야식으로 냉동식품과 라면과 치킨과 피자를 먹는 삶이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가 없다. 채식 이후로 10년간 감기몸살을 하루 이틀 두어 차례 겪은 일 말고는 장염과 위염에도 걸린 일이 없기 때문이다. 늘 소화가 잘되고 속이 편안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체중은 건강 체중에서 무려 10㎏이나 모자라는 저체중이었다. 채식 이후로는 군살이 빠지고 몸이 날씬해졌는데 오히려 몸무게가 늘어나 표준 체중이 되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건강해졌다는 증거라고들 했다. 그러면서 매년 앓던 구안와사를 앓지 않게 되었다. 항상 높았던 안압도 낮아져 더 이상 눈의 통증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땀 냄새가 달라지고, 끈적거리지 않는 것도 변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마음의 변화는 그보다 더 폭이 컸다. 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와 증오가 많이 사라져 공격적이었던 말과 행동이 점차 부드럽고 온순해졌다. 툭하면 욱하고 쉽게 화를 내는 일도 줄었다. 화가 너무나 많고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욕망이 가장 중요해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이제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편해지고, 평화로워져서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격성이 수그러들자 삶이 좀 더 다채로워지고 관계가 풍성해졌으며 가슴이 따뜻해진 것이다.

이렇듯 개인적인 변화의 폭은 매우 넓지만 아직 사회적인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여전히 달갑지 않은 질문과 육식의 권유를 받아야 한다. 마땅히 외식할 곳을 찾지 못하거나, 어느 모임에서는 나를 미리 배제할 때도 있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을 내가 비건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약간 못마땅하긴 하다. 하지만 조금씩 느리게 변해가는 것이 느껴지는 요즘, 이 세상의 모든 다양한 식성이 차별받지 않고 혐오 당하지 않는 세상이 곧 오리라 낙관한다. 그러니까 오늘은 왠지, 맛있는 비건 냉국수를 누군가에게 시원하게 대접하고 싶다. 후루룩, 후루룩 우리 함께 맛있게 먹고 싶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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