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화폐발행권 가졌지만
민간은행 대출 반복·돈 무한 창조
이자 끊임없이 벌어들이는 특권 누려
시중에 자금 넘쳐나도 국민은 빚만

한국은행이 찍어낸 현금은 지난 5월 기준 약 234조 원, 시중에 도는 돈은 3200조 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돈은 돌고 돌며, 돈을 낳습니다. 화폐발행권은 국민의 합의로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갖고 있습니다.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모두가 빚을 진 세상입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빚에 허덕입니다. 왜 그럴까요? 최근 나온 <화폐의 비밀> 한국어판은 화폐 발행 체계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 공동번역자가 모두 경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노동자는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자영업자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 돈을 번다. 그 돈은 어디서 왔을까. 시중에 도는 돈은 출처를 쫓아가다 보면, 결국 개인이든 기업이든 최초의 누군가가 은행으로부터 빌린 것이다.

화폐를 발행하는 권한은 중앙은행이 갖고 있다. 그런데 빚만 쌓이는 구조로 사실상 민간 은행이 돈을 발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한 활동가와 경제금융을 연구한 학자가 최근 <화폐의 비밀>을 공동 번역해 출간했다.

화폐의 비밀은 무엇일까. 지난 13일 만난 서익진(66)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와 김준강(52) 화폐민주주의연대(준) 준비위원은 지난 2012년 프랑스에서 처음 나온 책 <화폐의 비밀> 공동 번역을 통해 화폐 발행 구조의 모순을 꼬집었다.

◇"민간 은행의 무한 창조" = 돈은 경제 순환의 핵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진 만큼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고, 그만큼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누구나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돈은 얼마나 필요할까. 돈은 교환 수단으로 공공재 성격을 가지는데 양이 문제다. 물가 하락(디플레이션)이 없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통화량이 경제성장률만큼 늘어나야 한다. 경제성장을 위해 전보다 더 많은 빚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 화폐 체계에서 모든 돈은 은행에 진 채무다.

현대사회에서 화폐는 교환 수단으로서 합의의 증표다. 과거 '금'을 보유한 만큼 발행하던 '금본위제'는 지난 1971년 당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와 금 사이 태환 제도를 폐지하면서 사라졌다.

금 보유량과 관계없이 필요한 만큼 돈을 찍어낼 수 있게 됐다. 물론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등 물가 상승이나 하락을 고려해 각국 중앙은행이 정책·제도적으로 통화량을 조절한다.

그러나 서 교수와 김 위원은 민간 은행이 별다른 제한 없이 사실상 통화를 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허공에서 창조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민간 은행의 특권을 꼬집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100원을 발행해 민간 은행에 빌려주면, 민간 은행은 100원을 근거로 대출을 한다. 대출받은 이가 잔고를 은행 계좌에 넣어두면, 은행은 또 그 돈을 근거로 대출을 한다.

민간 은행은 예금자가 돈을 돌려받으려고 할 때를 대비해 보관해야 하는 일정 비율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출로 빌려준다. 만약 민간 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100원을 빌리고 지급준비율이 4%라고 할 때, 최대 2500원까지 유통되는 화폐량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은행의 '신용창조(Credit creation)'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올해 기준 우리나라 통화량은 약 3200조 원 규모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보면 광의통화(M2)는 지난 10년간 평균 6% 안팎으로 늘어났다. M2는 시중에 풀린 현금 유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은행이 공급한 현금(본원통화)은 230조 원 규모다.

◇"성장할수록 빚만 증가" = 서 교수는 "중앙은행이 민간 은행의 신용창조를 적정한 수준에서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민간 은행은 대출 신청을 받으면 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을까, 이자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등만 고려해 빌려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은행은 그 돈을 어디에서 구했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상식적으로 누군가가 1억 원을 다른 이에게 빌려주면, 빌려준 사람은 자산이 1억 원 줄고 빌린 사람은 1억 원 늘어야 한다. 통화량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은행이 1억 원을 대출해줄 때 어느 누구의 자산도 감소하지 않으면서 차입자의 자산만 늘어난다. 통화량이 늘어난다. 새 돈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사실상 민간 은행이 돈을 발행하는 것이고, 통화량이 늘고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계속 빚은 늘어나는 구조다. 시민이 돈을 대출받으면 이자를 갚아야 하고, 그만큼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무한 경쟁이 발생한다"며 "화폐발행권은 국민의 합의에 따라 중앙은행이 갖고 있고 원래 우리의 것인데, 왜 민간 은행이 그런 특권을 가진 것인가"라고 말했다.

서 교수와 김 위원은 오는 20일 오후 7시 30분 진주시 칠암동 44-5번지 '모두의아지트'에서 <화폐의 비밀> 북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온라인 화상회의(tuney.kr/화폐의비밀)를 통해 비대면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화폐의 비밀> 저자 제라르 푸셰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프랑스·스위스·영국·캐나다 등에서는 현행 화폐 발행 체계가 현시대의 각종 정치·사회·환경 문제를 일으킨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관련 운동단체의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자동차 제조사 포드를 창업한 헨리 포드(1863~1947년)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이 나라의 대다수 사람은 미국의 화폐 발행 구조와 은행 시스템에 대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진실을 알게 된다면, 내가 장담하건대 내일 아침이 오기 전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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