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
전·현직 교사 대화 내용 묶어
'꼰대'허물 벗긴 교육 사례 소개
코로나 이후 학교 역할 고민도

중3 아이가 집에 있다 보니 요즘 학교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안다. 이젠 들어도 별 충격적이지도 않은 현상 중 하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 반은 자고 반은 듣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이나 듣는다고?"라고 반문할 정도가 됐다. 선생이든 부모든 아이들 앞에서 자신이 공부하던 시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금기 사항'이다.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고, '라떼'로 비하돼 설득력 얻기도 어렵다. 아이들과 소통하려면 친구가 되어야 한다. 잘못을 나무라고 야단치는 어른이 아니라 들어주고 이해하고 잘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친구나 다름없는 어른.

공립 태봉고등학교 전·현직 교사 6명이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풀어놓은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대안학교 태봉고 이야기로는 두 번째 책이다. <선생님들의 수다>는 류주욱·백명기·손옥금·오도화·이인진·하태종 교사가 함께 모여 수다 떤 내용을 모아놓았다. 강의하듯 자료를 정리해 기록한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다가 경험한 대로, 떠오르는 대로 풀어낸 내용이어서 오히려 정감이 간다.

책을 읽다 보면 태봉고는 학생들만 공부하는 곳이 아닌 듯하다.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많이 배우고 꼰대라는 허물을 하나둘 벗어 던져가고 있었다. 하태종 교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태봉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려고 해요. 누군가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면 자신의 내밀한 감정,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짓누르던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고 해방감을 느끼게 돼요."(38쪽)

태봉고는 2010년 3월 개교한 전국 최초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다. 그만큼 사람들 관심도 뜨거웠다. 어쩌면 통상적인 교육 과정에 염증을 느낀 부모들이 많이 늘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태봉고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까. 먼저 '주 열기'라는 과정이 눈에 띈다.

"한 주를 여는 시간인 주 열기는 월요일 1교시에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5분 내외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한 주에 6~7명 정도가 발표해서 1년이면 모든 구성원이 한 번씩 발표하게 된다. 2교시부터는 교과 수업이 진행된다."(79쪽)

손옥금 교사 사례를 들어보자. "5년 전인가, 하연이가 욕을 주제로 주 열기를 시작했어요. 욕의 기원 의미(가족 욕이나 성적으로 비하하는 욕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욕을 쓰는 것이 타인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또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혐오감을 주는지 당차게 그 욕을 사용해서 의미를 전달하며 이야기했죠. 이로 인해 아무렇게나 욕을 쓰던 아이들이 충격을 받고 대중 앞이나 선생님들 앞에서 조심하기 시작했어요."(80쪽)

그야말로 산 교육이 아닐 수 없다. 교사로부터 욕하지 말라는 훈육이 아니라 처지가 비슷한 친구로부터 욕이 갖는 부정적 상황을 들었으니 공감하는 바가 컸을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이해와 공감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태봉고 교육의 중요한 지점은 학생들이 학교 일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류주욱 교사는 학생자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은 이전의 좋은 것은 이어가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학생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학생자치의 매력이죠. 밤을 새며 이어지는 회의로 행사를 새롭게 만들어내려는 의욕을 보였어요."(168쪽)

코로나19로 말미암은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하자 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고민을 199쪽부터 시작하는 '코로나 이후, 학교가 필요해요?'에서 엿볼 수 있다.

▲ 태봉고등학교 학생이 졸업식 전날 감사를 표하며 절을 하자 교사가 함께해서 고맙다며 맞절하고 있다. /태봉고
▲ 태봉고등학교 학생이 졸업식 전날 감사를 표하며 절을 하자 교사가 함께해서 고맙다며 맞절하고 있다. /태봉고

백명기 교사는 "학교는 왜 필요한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교사들이 거기에 대해 논의할 시점"이라고 했고, 이인진 교사는 "처음에는 학교에 오고 싶어 하던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대로가 좋다"고 한다며 "반대로 보면 학교가 역할을 제대로 못 했던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책 뒷부분에 졸업생들 수다도 덧붙였다. 학생회장 출신 5명은 태봉고가 현재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풀어놓았다.

"교수님을 자주 찾아가는 것도 태봉에서 배운 것 같아요. 태봉에서는 선생님들과 친하잖아요."(진세한)

"새벽 독서 시간이 참 좋았어요. 아침 6시에 이순일 샘과 원하는 학생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었는데 (…) 지금까지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이효정)

"상대방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존재 자체로 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많이 변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장수민)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적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태봉고에서 배운 것 같아요."(정다훈)

"경험이 주는 위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어요. (…) 내가 당장 지치는데 수업보다 백연사를 걷다 오는 게 중요하다 생각되면 백연사를 걸었어요."(김경환)

부모 처지에서 아이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던 학교 위상이 어느새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름언덕. 287쪽.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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