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꿰뚫는 디카시
문자 넘어 멀티 예술로

"해 질 무렵/ 창동 '해거름' 불이 켜지면/ 그리운 이 하나둘/ 추억의 계단을 오르고"('SUN SET' 전문).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만큼은 아니지만 디카시는 길이가 상당히 짧다. 디카시는 하이쿠와 달리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시인이 길게 쓰고 싶으면 길게 쓰고 짧게 쓰고 싶으면 짧게 쓴다. 대신 5행을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진은 필수다. 사진이 없는 디카시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디카시는 그 내용이 사진과 따로 놀 수가 없다. 'SUN SET' 역시 시는 사진을 이야기하고 사진은 시를 이야기한다. 오래된 '해거름' 간판 아래로 오랫동안 단골로 드나들던 사람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상상된다.

"정주경공업대학교 기숙사동/ 청춘의 민낯들"('봄날' 전문).

디카 사진은 기숙사 창밖으로 빨래들이 널려 있는 모습이다. 시인은 이 장면에서 청춘의 민낯을 발견했나 보다. 밖으로 나가면 누구보다도 완벽해 보이지만 혼자 있는 집에 돌아오면 후줄근한 빨래처럼 흐트러진 속성이 드러나는 그런 모습.

▲ 이상옥 시인의 <고흐의 해바라기> 중 해거름 디카시. /시집 갈무리
▲ 이상옥 시인의 <고흐의 해바라기> 중 해거름 디카시. /시집 갈무리

이상옥 시인은 2004년 고성에서 지역 문예 운동으로 디카시를 시작했다. 그의 노력으로 지금은 디카시가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이 시인은 창신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국경없는디카시인회 대표, 계간 <디카시>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자문화·활자매체에서 영상문화·전자매체로 문화와 문학의 중심축이 현저히 이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시가 문자 예술을 넘어 멀티언어 예술로서 시의 몸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디카시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회 디카시학술심포지엄에서 디카시연합회 발기취지문을 통해 시인이 한 말이다.

시집에 실린 디카시를 쭉 훑어보면 누구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것들이어서 나도 한 번쯤 찍고 써 볼까 생각하게 된다.

'레드 카펫 혹은'이라는 디카시는 낙엽이 깔린 길을 내려다보듯 찍은 사진에 "가을이라도 늦은 가을에는/ 누구나 영화 주인공 같아서…"라고 시를 붙여 놓았다. 흔히 보는 장면이고 흔히 느끼는 감성이다. 중요한 건 이 감성으로 찍고 풀어내어 표현하는 것이다. 도서출판 실천. 130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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