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꼬박 1년 '집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다. 여러 이유가 겹쳐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육아와 살림을 전담해야 했다. 내가 전업주부로 사는 동안 나를 만난 그 누구도 나를 주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노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 주부도 될 수 없었고 집사람도 될 수 없었다. 집사람은 남자가 겸손한 말씨로 자기 처를 이를 때 쓰는 말이다. 결혼한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오랜 기간 남성 중심 사회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생긴 단어다. 당연히 남녀차별 요소가 듬뿍 배어있다.

10일 경향신문 4면 '대선 주자들의 집사람 표현, 문제없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선 자기 처를 이르면서 '집사람'이라고 하는 대선 주자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를 언급했다. 다만 이재명 지사는 최근엔 이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유정인 기자는 기사에서 집사람이라는 말에 대해 "왜곡된 성 역할을 드러내는 단어로 지적되면서 '배우자'로 바꿔 부르자고 한 지 오래"라고 했다.

나는 배우자라는 표현이 사무적이고 딱딱하다고 여겨 수년 전부터 '옆지기'라는 표현을 쓴다. 지기라는 말은 친구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킴이라는 뜻도 있다.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지켜주는 존재이고 친구처럼 아주 평등한 관계인 사람이라는 인식이 담겼기에 좋아한다. 아내라는 표현도 '안에 있는 해'라고 의미부여하곤 있지만, 사실은 이 단어 역시 바깥의 반대말인 '안'이 핵심어여서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꺼리는 말이 되었다. 페이스북에 보면 나 말고도 '옆지기'라는 표현을 쓰는 이가 몇몇 있다. 여남평등시대에 서로 존중의 뜻이 담긴 '옆지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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