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독점 끝나고 분석도 순식간에
안면이 돈이던 세상의 종말 의미해

아날로그 세상의 단위가 '아톰(물질의 최소단위)'이라면 디지털 세상 단위는 '비트(정보의 최소단위)'이다. 네그로폰테가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벌써 26년 전인 1995년이다. 아톰의 체계 위에 구축된 아날로그 문명은 '십진법'을 기반으로 한다. 아마 인류가 처음 숫자를 인식할 때 열 손가락으로 세었던 것이 시작일 것이다. 이에 비해 디지털 문명은 0과 1의 '이진법'이 기반이다.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컴퓨터가 32비트에서 64비트가 되면 십진법으로는 2배이지만 이진법에서는 2의 32승에서 2의 64승, 그러니까 1850경이 늘어나는 것이다. 1경은 1조의 1만 배로 1 뒤에 '0'이 16개가 붙는다. 그만큼 디지털 세상을 만드는 4차산업혁명은 속도가 빠르고 범위가 넓고 모든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4차산업혁명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으로도 불린다. 우리 주변에도 이미 많은 부분에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져 있다. 여행을 갈 때 필수품이었던 지도책은 내비게이션으로 바뀌었고, 음악도 레코드판에서 테이프와 CD를 거쳐 지금은 휴대전화로 듣고 있다. 행정 서비스도 그렇다. 코로나 국면에서 일본이 고전하는 것은 백신 접종을 우편으로 통보하는 등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디지털 전환이 늦기 때문이다.

한국은 동일한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더라도 반드시 의사 처방을 받고 약국에서 구입해야만 한다. 이럴 경우 의사 면담 시간은 보통 1~2분 수준, "별다른 문제 없죠, 처방해 드릴게요"가 대부분이다. 병원 가는 데 소요되는 환자의 시간이나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미국에는 매번 의사를 만나지 않아도 일정 기간 약을 받을 수 있는 '처방전 리필제'가 있다. 그렇게 받은 처방전을 아마존에 전송하고 주문하면 2시간 이내에 약이 집으로 배달된다. 처음 진단을 받을 때도 원격진료가 가능하다. 한국은 아무리 오지에 살더라도, 날씨가 궂고 태풍이 몰아쳐도 의사를 만나야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다. '일본경제신문사'가 펴낸 에는 미국 법정 사례가 나온다. 자료나 증거정리에 조금만 소홀해도 재판장이 "AI를 잘 활용하세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AI 활용이 가능한 것은 판례 등이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정리, 공개가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용 컴퓨터가 4대에 불과한 '판결정보열람실'조차 코로나를 이유로 7개월 넘게 문을 닫고 있다.

최윤식은 <당신 앞의 10년, 미래학자의 일자리 통찰(2020)>에서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 장차 없어질 수 있는 직업 7가지'라는 영국 BBC의 보도를 소개한다. 그 7가지에는 의사, 변호사, 건축가, 전투기 조종사, 부동산 중개인 등이 포함돼 있다. 공통점은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업무를 하며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의 가성비가 높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들 직역은 글로벌 경쟁을 하지 않고 국내 독점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이다. 외국과는 달리 디지털 전환이 가장 늦고 저항도 심하다. 데이터를, 정보를 독점적으로 쥘 수 있는 세상이 아날로그이고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공개되는 세상이 디지털 세계이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라도 순식간에 분석할 수 있는 세상에서 데이터는 바로 돈이다. 데이터 공개는 안면이 돈이던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지난해 여름 전공의들이 파업까지 해가며 원격진료를 막으려 했던 것이나 검찰 개혁을 반대하며 수사와 기소권 독점을 계속하겠다는 검찰 주장은 바로 데이터가 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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