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외침만 무성하고 실천은 없어
먹는 양 조금만 줄여도 변화 놀라울텐데

오늘은 가스레인지 불에 송곳을 달구어서 혁대에 구멍을 냈다. 이전에 가끔 혁대의 구멍을 늘이기 위해 해본 일이지만 오늘은 혁대의 구멍을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구멍을 늘일 때 느끼지 못한 묘한 즐거움이 있어서 좋았다.

저는 키가 170㎝이고, 총각 때는 몸무게가 60㎏이었는데 결혼 후 갑자기 70㎏으로 불어나더니 지금은 80㎏ 중반이니까 결혼 후 40년 동안 15㎏ 이상이나 늘어났고, 허리도 30인치 이하에서 36인치로 늘어났으니 혁대의 구멍도 6만큼이나 늘어난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혁대 구멍을 줄이려고 한 것은 최근에 효소단식을 20일이나 했는데 체중이 5㎏ 이상이나 빠져서 혁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중이 줄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도 맑아진 것 같아 이참에 먹는 것을 줄이고, 혁대 구멍도 줄여보자는 결단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나의 건강뿐 아니라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다른 생명체에게도 뭔가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텐데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추운 캐나다가 불볕더위로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더운 브라질에는 때아니게 눈이 오고 그 밖에 산불, 허리케인, 홍수, 가뭄 등으로 지구가 온통 난리인 데도 말이다.

전 국민이 백신을 맞고 있고 곧 집단면역체제가 구축되면 코로나19에서 해방될 거라고 하지만, 이것은 오산이다. 왜냐하면 코로나19는 백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고, 삶의 변화 없이는 제2, 제3의 코로나19가 계속될 것이다. 지금 전 세계가 기후 위기 비상사태를 외치고 있기는 하지만 실천은 없고, 말만 무성하니 불타고 있는 지구를 누가 구할지 걱정이다.

지구의 시간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혁대 구멍 한 칸의 기적을 바란다는 것이 우공이산처럼 들릴지 몰라도 한 사람이 지금 먹는 양의 3분의 1만 줄이더라도 놀라운 변화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식탁부터 시작해서 모임과 파티를 줄이고, 먹거리나 음식쓰레기를 최소화한다면 이 경비만 따지더라도 천문학적인 숫자일 텐데 이것이면 어떤 기적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혁대 구멍 한 칸을 늘이기는 쉬워도 줄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욕심이 죽음이고, 비움이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하더라도 혁대 구멍 한 칸 줄이는 일에는 도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성경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죽음을 가져온다'(야 1:15)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이 말씀이 빛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러나 지금이라도 혁대 구멍 한 칸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세상이 좋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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