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가량 높이 물 차올라
지대 낮은 집·철공소 침수 피해
석곡천 축대 공사로 역류 의심
재난 고려한 세심한 행정 주문

8일 오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리로 가는 산길인 구산로에는 토사와 나뭇가지 등 억수장마 흔적이 드문드문했다. 7일 오후 3시쯤부터 내린 비는 이날 하루 최대 250㎜. 구산면 주민 11명이 대피하고 피해 신고가 잇달았다. 창원시 안전건설교통국은 수정리에서 대피한 주민은 2명으로 파악했다.

먼저 수정리 어귀에서 수정삼거리까지 700m가량 이어진 도로를 따라 흔적을 살폈다. 마주친 주민 대부분 "큰 피해 없었다"고 말했지만, 피해를 본 몇몇 주민 상황은 심각했다.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어. 비가 많이 온다면서 대피를 하라더라고. 그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어서 흘려 넘겼지. 이따 밖에 잠깐 나왔더니 마당에 물이 가득 차서 마루를 넘을 듯하더라고."

▲ 8일 새벽에 내린 비로 창원시 구산면 수정마을 주택 일부가 침수됐다. 수해를 당한 마을 주민이 젖은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8일 새벽에 내린 비로 창원시 구산면 수정마을 주택 일부가 침수됐다. 수해를 당한 마을 주민이 젖은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마을 주민 서순연(89) 씨 집은 본채와 창고 등으로 쓰는 별채로 나뉘었는데, 지면보다 낮은 부엌을 빼고 본채는 50㎝가량 지면과 사이를 띄운 구조라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 물이 들어찬 본채 부엌과 마당, 별채는 급히 찾은 서 씨 가족이 거두어 바로잡고 있었다.

서 씨 집과 가까운 수정철공소 앞에서 이기효(73) 씨를 만났다. 2층 구조인 이 씨 집은 1층과 2층 모두 물이 들어찼다. 이 씨는 물이 들어차리라 미리 예상하고 1층 철공소 안 집기와 장비는 지면보다 높은 곳에 두고, 물이 들 때는 급히 배수기를 가동했다. 이 씨 집은 야트막한 산에 붙었는데,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2층으로 들어찼다. 2층 침수를 예상하지 못한 이 씨는 밤을 꼬박 새웠다.

이 씨는 집 앞 도로에 물이 가득 찼다고 설명했다. 어디까지 들어찼는지 물으니 이 씨는 손으로 무릎을 가리켰다. 이 씨 집 옆 건물 벽도 지면에서 50∼60㎝가량 높이까지 검게 젖어있어 전날 침수 상황을 가늠케 했다.

서 씨와 이 씨 모두 집에 물이 들어차는 일은 손꼽을 정도로 드물다고 말했다. 조수 간만 차가 큰 백중사리 기간이나, 태풍 매미가 상륙한 2003년 9월에나 있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 씨는 이번 침수 피해를 "인재"라고 누차 말했다.

억수장마에 물이 들어찬 서 씨와 이 씨 집은 공통점이 있었다. 집보다 맞닿은 도로가 더 높았고, 도로마저도 수정리 어귀에서 수정삼거리까지 700m가량 이어진 구간에서 저지대에 들었다. 산과 고지대에서 흐른 빗물과 토사가 고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물이 들어차기 시작한 오후 7시 즈음에는 밀물이 가장 높게 드는 만조가 겹쳤다.

하지만 이 씨가 "인재"라고 말한 까닭은 다른 데 있었다. 이 씨는 도로 맞은편, 바다가 있어야 할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수정만 매립 전에는 이런 침수 피해가 없었습니다. 태풍이 와서 육지로 바닷물이 넘쳐도 이런 일은 없었단 말입니다. 집 앞 도로만 높은 게 아니라 매립지 자체가 높으니 빗물이 빠져나갈 데가 있겠습니까."

▲ 8일 새벽에 내린 비로 먹을 것이 모두 젖었다는 창원시 구산면 수정마을의 한 할머니. 툇마루에 앉아 상황을 설명하는 할머니 옆에 시에서 보내준 쌀포대 하나가 놓여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8일 새벽에 내린 비로 먹을 것이 모두 젖었다는 창원시 구산면 수정마을의 한 할머니. 툇마루에 앉아 상황을 설명하는 할머니 옆에 시에서 보내준 쌀포대 하나가 놓여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지난 2006년 STX중공업이 조선기자재 공장을 유치하고자 수정만 매립시공권을 인수하면서 바다가 땅이 됐다. STX중공업이 유치를 포기한 뒤로 지금까지 방치됐다.

이 씨는 매립지는 당장 손 쓸 도리가 없더라도, 평소 기본 재난 대비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 씨가 수정삼거리에서 석곡리로 가는 석곡로로 안내했다.

"석곡로와 맞닿은 산에서 아무리 물이 내려와도 석곡천으로 빠지는데, 이번에는 석곡천 반대 방향인 우리 집으로 물이 흘렀습니다. 어느 개인이 축대공사를 하면서 굴착기로 물길을 크게 낸 까닭에 방향이 틀어진 겁니다. 행정기관에서 잘 챙겨봤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재난 대비가 따로 있습니까. 사소한 것 하나도 평소 잘 챙기면 재난 대비죠."

장마가 끝나지 않은 터라 이 씨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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