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 청산 조례까지 만들어놓고
친일행적 인사 기념사업 추진한다니

어떻게 봐야 할까.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사안별로 나눠 판단해버리면 그만이다. 하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큰 건 사실이다.

김해시에서 벌어지는 '친일청산'과 관련한 일을 두고 드는 생각이다. 현재 김해시는 일본식 지명을 정비하고 공적 장부에 남은 일본식 이름을 없애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름하여 '일제잔재 청산 사업'이다. 이 일로 김해시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다른 시군으로 확산했으면 하는 좋은 사례인 셈이다.

그랬던 김해시가 지난달에는 가야테마거리에 김영춘 노래비 건립 추진을 지원하면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김해 출신 가수 김영춘은 '홍도야 우지마라' 등으로 사람들 심금을 울린 업적을 남겼다. 반면 일제 식민 통치와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동원을 독려하는 일제강점기 군국가요를 여러 곡 불러 친일행적이 선명한 인물이다.

최근에는 삼계동 김해시민체육공원에 친일 문학인 모윤숙 시비가 설치돼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것도 현충시설인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옆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한 친일파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시비가 버젓이 서 있는 것이다.

가장 의아하게 여겨지는 건 김해시의회가 제정한 '일제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다. 지난 24일 시의회를 통과한 이 조례는 반민족행위자 선양·추모·기념하는 행사나 사업 등에 참여·예산 지원 제한, 일제 상징물 노출하는 행위 제한에 관한 사항 등을 담았다. 일제잔재청산위원회 설치와 구성·운영, 일제 잔재 청산사업 예산 지원, 일제 잔재 청산 교육 사항 등을 법제화했다.

물론 조례 제정의 주체는 시의회이지만 대표 발의한 이광희 의원은 김영춘 노래비 건립추진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노래비 추진에 대해 "군국가요를 부른 것을 포함해 공과를 다 기록해서 김영춘 예술가의 삶을 조명하는 노래비를 설치할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가난했던 가수가 군국가요를 안 부르면 안 되는 험악함을 폭 좁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친일 청산을 이야기하면서 한쪽에서는 친일행적 인사를 기념하고. '유체이탈 행정'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혹시 조례를 보여주기용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노래비 건립은 추진세력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이 모든 것이 내년 선거의 표까지 염두에 둔 계산은 아닌지 여러 의구심이 이어진다.

아무튼 김영춘 노래비, 모윤숙 시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두고 보자. 그게 김해시 행정과 새로 제정한 조례의 진정성을 판단할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도 지켜보고 있다.

만약 잘 몰라서 그랬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알고도 그런다면 더는 친일청산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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