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탐한 미얀마 군부의 만행 외면하면
그 국민의 고통이 누군가의 미래 될 수도

'독재자 명령을 따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군경을 향해/ 조금 전까지 군중과 함께 두려움 없이 나아가던 여성이/ 청년이 아저씨 아주머니 어린이가 흉탄에 맞아 숨졌다.// 빼앗긴 민주 자유를 외치던 그의 입에서는 한줌 피가 흐른다./ 그들을 막아서던 하수인들에게 쏘던 분노의 눈은 감겨 있다./ 저 너머 숨은 독재자 향해 돌을 던지던 손은 다소곳하다.// (중략) / 더 커지는 목소리, 거세지는 분노의 눈길, 무수히 쏟아지는 돌팔매질/ 저 속에 그들은 살아 있다. 그들의 죽지 않는 저항의 의지/ 한 걸음 한 걸음 대열을 이끌고 앞장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를 읽으면 저절로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찍은 옛 영상과 사진들 속 참상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시에 담긴 건 1980년 5월의 광주가 아니다. 이 시는 2021년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한 임백령 시인의 작품이다. 한국의 과거가 이국땅에서 재현된 것처럼 소름 끼치도록 닮은 미얀마의 모습이 시인의 여러 글 속에서 무수히 이어진다.

지난 20일 한낮 창원역 앞 거리.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맨손의 시민들을 향해 무장한 군경이 사정없이 진압봉을 내리친다. 발길질을 한다. 인간의 행위라고 믿고 싶지 않은 무자비한 폭력이다. 이것은 미얀마 교민들이 직접 만들고 연기한 거리극이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잔혹한 현실이 지금 미얀마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권력을 욕심 내는 자의 무자비한 국민 학살이 어디에선가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일상 회복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다음 달부터 거리 두기 정책이 대폭 완화돼 기대감이 더 커지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코로나 발생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늘어나는 전 세계 백신 접종자 수를 보며 머지않아 '평범한 생활'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자란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자유를 영영 빼앗기고 말까 봐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며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인이 보는 무대에 서서 제발 도와달라며 위험을 무릅쓰고 호소한 미스 미얀마,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쿠데타 군부에 저항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일본 망명 신청을 한 축구선수, 총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며 온몸으로 시민의 희생을 막으려 한 수녀, 그리고 수개월간 스러져간 수많은 목숨과 피 흘리면서도 오늘 시위대열에 선 목숨들.

백신에 취해 잊고 있었다. 나의 자유가 오래전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내던져 불태운 결과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그 자유를 지키려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미얀마에 흐르는 피를 외면하고 온전한 일상 회복이 가능할까. 부귀영화를 누리려 타인의 생명과 자유를 해치는 짓을 방관한다면, 대한민국의 과거가 미얀마의 현재가 되었듯 미얀마의 오늘이 또 다른 누군가의 미래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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