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벗어나려는 여성의 입 막겠단 의도
동료 군인으로 인정할 생각도 없으면서

"내 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신문>에 힘을 보태주세요." 병역 기사를 찾다 방문한 여성신문 누리집의 후원인 모집 문구를 보자 어딘지 마음에 걸렸다. 이 껄끄러운 기분은 '내 딸'이라는 낱말에서 나온다. 남의 딸이 아닌 내 딸. 요즘은 자식을 호명할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딸이나 아들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처럼 "딸!", "아들!"로 부르는 이상한 호칭이 늘어나는 데서 알 수 있듯 자식을 세상 전부로 착각하는 부모라면 이런 광고 전략은 먹혀들 수도 있겠다. 성 불평등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남자'라도 자기 딸의 미래를 생각하면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도 있다고 하니,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을 깨치는 힘이 되는 것도 같다. 그러나 가족 사랑이 아무리 깊은들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딸이 안쓰러운 부모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면 아들 사랑도 당연하다. 그 아들은 딸이라면 안 해도 되는 2년의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쇠도 녹일 청춘의 2년. 아깝고 억울하다. 여성에게는 특혜이고 남성에게는 불이익이 아닌가? 남자가 차별을 당한다는 생각은 아들 가진 부모뿐 아니라 군대에 가야 하는 당사자들 특히 20대 남성들에게 퍼져 있는 듯한데 이는 예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성도 군에 가야 한다는 주장도 군 가산점 위헌 결정 이후에 등장하더니 이제는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근거로 자리를 잡았다.

2015년 고용노동부 통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 총액이 높게 나타난 연령대가 딱 하나 있다. 20대 초반 남성 임금을 100으로 보면 같은 연령대 여성 임금은 100.6이었다. 여성이 취업을 준비하거나 시작하는 시기에 병영 생활을 하거나 군 복무 전후에 안정적인 직장을 잡지 못하는 20대 초반 남성의 임금에만 국한하면 남자들의 역차별 주장은 근거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20대 후반에서는 곧바로 역전해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이 연령대가 높아갈수록 떨어지더니 50대 후반 여성 임금은 48.3을 찍었다. '여사님'으로 불리며 돌봄·청소·대면 서비스 현장을 누비는 이 나이대 여성은 또래 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여자들이 남자의 군 복무 덕에 편히 살거나 남자가 일하는 동안 하릴없이 카페에서 수다로 시간 때운다는 인식이 박힐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추 눈금을 한 칸이나마 옮겨놨더니 되레 불공정하다고 난리 치는 것이, 여성 군 복무를 주장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론의 실상이다. 나는 여자도 군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런 목소리를 막고 싶지는 않으며 법이 만들어져도 반대할 생각은 없다. 직업군인 여성들이 성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세상은 남성이 여성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으며, 특히 군대는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자들에게 여성 군인은 자신들의 특권을 비집고 들어오는 침입자일 뿐이다. 직장 성폭력이 그렇듯이 군대 성폭력은 여성을 군대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구조적인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 여자도 군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진짜 의도는 차별을 벗어나려는 여성의 입을 다물게 하려면 군대와 관련한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믿는 데 있다. 여성을 동료로 인정할 생각도 없으면서 여자도 군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기기만이 필요해졌을 뿐이다. 특권을 누리는 자가 되레 차별을 받는다고 착각하는 것은 현실 오도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사회상을 보여준다. 좋은 조짐이고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 미래는 나아질까? 그 미래는 '내 딸'부터가 아니라 나도 누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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