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차등 배려해야 차 중심도시 탈출
창원시 'BRT-누비자' 연계체계 마련
대중교통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어야
"시민 힘으로 자전거도시 명성 되찾길"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가용 승용차 이용을 편리하게 하면서 동시에 보행자, 자전거, 대중교통도 편리하게 하는 그런 기적은 없다. 내가 10을 얻으면 상대가 10을 잃고, 상대가 10을 얻으면 내가 10을 잃게 되는 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나서서 녹색교통 삼총사인 보행자와 자전거,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적색교통'인 승용차 이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러면서 자동차 중독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방전으로 '야금야금 작전'을 제시했다. 시민들과 자동차 없는 일상 체험을 조금씩, 자주 늘려나가자고 했다. 지난 17일 서울시립대 연구실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가 지난 17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녹색교통 삼총사인 보행자와 자전거,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적색교통'인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병욱 기자
▲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가 지난 17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녹색교통 삼총사인 보행자와 자전거,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적색교통'인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병욱 기자

◇자가용 승용차는 기득권이다 = 자동차 중심 도시를 바꾸려면 먼저 우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피아 식별'은 필수다. 정 교수는 승용차를 '도시 안의 기득권'으로 간주했다. 단적으로 모든 관공서를 보라고 했다. 승용차는 건물 현관 앞까지도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땡볕에 최소 5∼6분 이상 걸어야 한다. 그나마 있는 자전거 도로도 자동차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불법 주차해 가로막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대목에서 정 교수는 국회의원 가운데 드물지만, 자전거로 이동하는 김성주(더불어민주당·전북 전주 병) 국회의원 사례를 언급하면서 지난 16일 상황이 담긴 김 의원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보여줬다. 김 의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자전거 도로를 점령한 경찰버스! 자전거는 인도로 가야 하나요? 차도로 뛰어들어야 하나요?"라는 글을 남겼다. 정 교수는 "경찰조차 별 문제의식 없이 자전거 도로를 버스로 막는데…." 한숨을 쉬었다.

정 교수는 '도시의 공간'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도시에 피해를 덜 주는 순으로 시민을 '차등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행자를 제일 먼저 배려하고, 두 번째가 자전거, 세 번째 대중교통 이용자, 자가용 승용차 타는 사람 순서로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의 말이다.

"시민 공감대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도시가 주목받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 시장들이 뜻밖에 자동차 문제에는 둔감하다. 아마도 바쁘다는 핑계로 기사 딸린 자가용 승용차를 주로 타기 때문일 거다. 민주적인 시장이라면, 앞서가는 시장이라면 도시에서 자동차 타는 걸 불편하게 만들고, 죄책감 들게 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몰아내니 지역이 살고 인구가 늘었다 = 정 교수는 실제 사례로 '차 없는 도시'로 알려진 스페인 폰테베드라시의 미구엘 로레스(Miguel anxo Fernandez Lores) 시장 이야기를 들려줬다. 폰테베드라시는 1990년대 후반까지 창원처럼 자동차에 중독된 도시였다. 인구 6만여 명에 자동차가 1만 7000대가 넘었다. 날마다 교통사고가 나고 아이들이 다쳤다. 외신기자들이 '자동차로 가득 찬 사막 같은 도시'라고 명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의사였던 미구엘 시장이 지난 1999년 처음 출마했는데, 그의 공약이 그야말로 화끈했다. 도심지에서 자동차를 없애버리겠다, 도시 주인의 순서를 바로잡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는 실제 보행자→자전거→대중교통→자가용 순서대로 공간을 썼고, 배려했다."

결과는? 교통사고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009년부터는 아예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차를 몰아내고 도로를 시민들의 산책 공간과 휴식공간으로 되돌리니 지역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다른 도시에서 1만 명 이상 전입을 했단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도시들도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자동차 의존도를 혁신적으로 줄여야 한다"며 "유럽이나 북미, 중남미 등 전 세계 대부분 도시가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여전히 자가용 승용차 중심이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야금야금' 차 없는 체험 공유 = 정 교수는 "늦었지만,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지금부터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먼저 승용차 위주의 도로에 당당히 '자전거 전용도로'를 요구하자고 했다. 탄소 배출 없이 자기 몸으로 이동하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낮게 대우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대중교통은 말로만 이용하라고 하면 아무도 타지 않는다고 했다. 도로 중앙차로를 대중교통 전용차로로 지정해 도시에서는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이 훨씬 빠르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원은 마산·창원·진해 주요 지점을 BRT(Super-Bus Rapid Transit·간선급행버스)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기존 시내버스와 공공자전거 누비자는 BRT를 보완하는 이동수단으로 하는 체계를 마련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자체장들이 승용차족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므로 자동차를 보유한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 마음과 행동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으며, 한 번에 바꾸면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야금야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동차 없는 생활을,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리하다는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1997년 프랑스 라로쉐에서 시작돼 지금은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 잡은 차 없는 날 행사도 출발은 그러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몇몇 주요 도로를 정기적으로 주말이나 공휴일 차 없는 도로로 만들어 시민들과 걸어 보는 실험을 해보자. 당장 아이를 둔 엄마와 아빠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것이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부모들도 흐뭇하게 지켜볼 것이다"며 "저 넓은 창원대로는 어떤가. 한 달에 하루라도 자동차 통행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정도 편도 1개 차로 이상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지정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게 해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결국 세력 싸움이다. '적색교통'인 승용차 타는 사람과 녹색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간의 싸움이다"며 "시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당연히 착한 세력 편에 서야 한다. 대기오염과 탄소를 줄이고, 교통사고도 줄일 수 있는 이동수단에 시 재정을 투입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창원은 자전거로 명성을 얻은 도시였는데, 자동차 도시로 전락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창원시민들이 지혜와 힘을 잘 모아서 반드시 이겼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끝> 

 

정석 교수는? - 30년 도시 연구자 "좋은 시민이 좋은 도시 만들어"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196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13년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근무했다. 시민 보행권과 보행환경, 걷고 싶은 도시 등을 연구했다. 1997년 1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서울특별시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기본조례를 만드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천천히 재생>, <도시의 발견>,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등이 있다. 지난해 KBS 1TV <명견만리 Q100>에 출연해 '도시의 미래, 시속 4㎞'를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정석 교수는 말한다.

"30년 넘게 도시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입니다. 결국, 좋은 시민이 좋은 도시를 만들고 누릴 수 있다는 것. 개인의 삶이 안전하고 행복하다 해도 도시가 안전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은 순진하게 '살기 좋은 도시'를 바라며 살지만, 권력과 자본은 아주 영리하게 '팔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팝니다. 좋은 도시를 바란다면 도시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해야 합니다.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기다리지 말고, 가만있지 말고 행동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 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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